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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시각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2023.11.16

시각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 대표이미지

장애시각장애시각장애학생

 

시각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이보인 팀장(행복나눔재단 R&D lab), 김정호 이사(엑스비전테크놀로지) 외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 의지와 욕구는 얼마나 높은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을 외면하는 차별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잘 들어오셨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좀 전의 질문에 대해 안승준 한빛맹학교 교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장애라는 한 가지 요인이 사람의 의지와 욕구와 적성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에게 적절한 교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라고 자문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1조 1항입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단면을 소개하는 김한솔 유튜버는 말했습니다.“ 공부하려고 해도 점자로 제작된 책이 아예 없어요. 수업이랑 친구들 설명만 듣고 시험을 쳐야 하는 거예요. 책이 없어서 쪽지시험 0점 받은 적도 있어요. 책이 있을 땐 100점 맞았고요.” 시각장애 학생이 점자로 된 교재를 받아보려면 최소 2~3달, 길게는 1년, 평균 5개월이 소요됩니다. 주문 후 하루면 집앞까지 도착하는 비장애인용 교재의 보급 상황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시각장애인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는 '심한 저시력', 그리고 ‘심하지 않은 저시력’으로요. 어떤 학생에겐 점자가 유용하고 어떤 학생에겐 확대 교재나 음성 자료가 유용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교재나 교구, 심지어 교과서마저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 시각장애 학생은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무원이 되길 희망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시각장애인이 직업을 가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직업 선택에 앞서 학습 과정에서부터 교육이 무의미하다는 세뇌의 과정을 겪는 것이죠.. 시각 손상이라는 장애를 가졌을 뿐인데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시각장애인의 학습권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 학생과 학습의 간극을 줄이는 행복나눔재단의 프로젝트

이보인 팀장의 발표 현장 사진. 이보인 팀장이 무대에 서서 설명 중이고, 뒷편 큰 스크린에는 발표자료가 띄워져 있다.

[사진=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이보인 R&D lab 팀장]

행복나눔재단은 지난 11월 16일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과 성장>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시각장애 학습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보인 행복나눔재단 R&D lab 팀장, IT기술을 기반으로 대체자료를 제작하는 김정호 엑스비전테크놀로지 이사를 비롯, 시각장애 학생의 차별없는 배움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박진석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 연구원이 참석해 시각장애인의 학습을 어렵게 하는 요인부터 상황 개선에 필요한 접근방법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먼저 이보인 행복나눔재단 R&D lab 팀장은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 향상을 위한 방법론과 목표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행복나눔재단이 설정한 목표는 시각장애 학생과 학습자원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취한 방법은 밀착관찰이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점형 익히기 - 촉각으로 이해하기 - 복잡한 문법(74개 규정) - 풀어쓰기, 읽기 순으로 진행되는 점자 학습 과정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우는 과정]

 

첫 미션은 점자를 쉽게 배우게 하기였습니다. 비장애인이 한글을 떼는 것과 달리 점자를 배우는 건 생각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점형(점자의 모양)을 익히고, 촉각으로 이해하고, 74개나 되는 점자규정(문법)을 외우고, 풀어쓰고 읽기의 4단계를 거쳐 점자를 완전히 익히려면 3년이 넘게 걸립니다. 이 시간을 단축하고 시각장애인이 점자 익히기를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 행복나눔재단은 배울 기회를 놓친 126명의 시각장애 학생이 점자를 익히는 과정을 1년간 밀착 관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문제점을 도출하고 새 교구를 개발했죠. 바로 점형을 익히는 교구 '탭틸로'와 점자 쓰기 학습도구 '버사슬레이트'입니다. 재미있게 점자를 학습할 수 있도록 낱말 카드와 동화책, 반복학습을 위한 앱도 만들었습니다.

 

점자 실력의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는 도구가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점자 문해력 평가 지표도 개발했습니다. 어느 영역이 부족한지 알아야 실력이 향상 되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점자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점자 학습 진도가 차이난다는 점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의 점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자교육이 점차 발달해 점자 일일학습지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은 진도에 따라 공부할 수 있고 학부모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죠.

교사(진도 관리, 멘토링), 탭틸로(점형 익히기), 교구·교재(낱말카드, 동화책, 학습 앱), 평가 지표(영역별 문해력 측정), 부모 교육(교수법, 네트워크 모임)

[점자를 배우기 위한 프로그램]

 

그렇게 부족한 점을 하나씩 메꿔가며 교구와 교재, 선생님을 지원한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초 학습목표는 일반 초등학생이  책 읽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었는데 12개월의 교육 과정을 마쳤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의 80% 수준으로 실력이 향상되었습니다. 

 

또 점역 문제집이 전국 어디에 있는지,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서도 검색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역 문제집 정보를 모아 ‘에듀모아’라는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에듀모아’를 사용하면 학생들은 점자 자료가 전국 어느 기관에 있는지 단 5분만에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행복나눔재단이 발견한 두 번째 문제영역은 점자로 공부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문제지를 점역 맡기는 등 의지 있게 점자로 공부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단 10명입니다. 재단은 그중 9명을 섭외해 4년간 밀착 관찰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소하고도 중요한 문제점이 도출되었습니다. 점역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거죠. 문제집이 출판되자마자 점역을 맡겨도 평균 5개월 후, 학기가 끝나서야 문제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점역사 1명이 책 1권을 전부 점역해야 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점역 과정의 간소화 - (1단원 -> 2단원 -> 3단원 -> 4단원 -> 제공) ->  여러명/단원별 점역으로 제공기간 단축(1단원~4단원 -> 단축) : 학생(저번 학기보다 문제집이 빨리 오니까 중간고사 전에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점역 과정의 간소화]

 

그래서 도출한 해결 방법은 인력을 충원하고, 점역 과정을 쪼개는 것입니다. 1명이 한 단원을 점역하는 게 1개월 소요된다고 봤을 때, 4명이 동시에 점역하면 1개월 만에 4단원짜리 책을 점역할 수 있겠죠. 그 결과, 문제집을 받는 시간이 약 5개월에서 1개월 반으로 3개월 반 감축되었습니다. 점역 과정의 작은 포인트를 캐치하고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흥미롭지 않나요? 

 

이보인 팀장은 이러한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직 찾지 못한 문제는 많다. 밀착관찰하고 간극을 찾고 간극을 메꾸는 실험을 시도한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작은 문제를 발견하고 실험을 반복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 두루미와 여우가 함께 식사하는 방법은?

연단에 서서 점자로 발표문을 읽으며 발표하는 김정호 이사의 현장 사진.

[사진=김정호 엑스비전테크놀로지 이사의 발표 모습]

 

두 번째 연사로 단상에 오른 김정호 이사가 재직 중인 엑스비전테크놀로지는 시각장애인용 대체 자료, 화면읽기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김정호 이사는 세상에 학습자료가 수도없이 보급된 상황에서 시각장애 학생이 학습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두루미와 여우' 우화에 빗댔습니다. "두루미는 널따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여우는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요. 서로의 방식으로 대접하려다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도 유명 일타강사의 인터넷 강의 영상이 보급되고 있지만 '이것', '저것'이라 지칭하며 판서를 가리킨다면 시각장애 학생은 소리만으로 영상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은 점자, 음성자료, 확대자료 등을 이용해 학습합니다. 전맹이라면 점자나 음성자료가 필요하고, 저시력 학생은 독서확대기, 스마트폰을 이용한 확대자료를 사용하겠죠. ‘이렇게 세상에 자료가 많은데 왜 시각장애인은 자료 결핍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정호 이사는 대체자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대체자료 콘텐트는 우리가 읽는 책을 구성하는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책에는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이미지, 스타일 등이 포함됩니다.

한글, 숫자, 한자, 로마자로 각각 다르게 숫자 5을 표현하는 이미지와, 복잡한 수식 이미지를 나타내는 발표 자료.

[점자 사용에서 텍스트 표현의 어려움]

 

예컨대, 텍스트를 점자화하는데 ‘5G’ 통신과 ‘5g’을 구분할 수 없다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전혀 달라지겠죠. 그림 또한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그래프는 어떻게 읽게 할 것이며 어려움이 많습니다. 폰트의 크기나 머리말, 각주 등의 요소를 말하는 스타일도 비장애인에겐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소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도통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대체자료 제작은 여전히 수작업 비중이 높습니다. 마치 체크무늬 옷을 손 뜨개질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김 이사는 수작업 의존으로 인한 대체자료 제작의 세 가지 어려움을 소개했습니다. 첫째, 자료 제작기간 단축이 어렵다. 둘째, 요소별 표현의 제약이 크다. 셋째, 제작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점자를 입력하면서 동시에 점자를 나타내는 화면을 가지고 있는 점자 디스플레이AI로 풍경 안에 있는 요소들을 인식하는 이미지 인식 기술

[(좌) 모나크 사의 점자 디스플레이, (우) AI 이미지 인식 기술]

 

김 이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지털 혁신 사례를 몇 가지 소개했습니다. 먼저 모나크 사의 패드형 점자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김정호 이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궁극의 점자 디스플레이’입니다. 다른 기기들이 점자만을 표시할 때 이 기기는 점자와 촉각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 이미지 파일을 촉각이미지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이 있고 터치 센서도 탑재되어 이미지의 원하는 부분을 터치하면 음성이나 점자로 설명이 제시됩니다. 

 

다음은 AI 이미지 인식 기술의 사례입니다. 현재는 모두 사람이 수작업으로 이미지 설명을 입력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요. 김정호 이사는 시각 보조가 필요한 사용자에게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식한 이미지 정보를 알려주는 앱 서비스로 국내에서 개발된 '설리번플러스'를 소개했습니다. AI로 이미지와 사람 얼굴을 인식해 묘사하고 텍스트 인식/스캔까지 가능해 유사한 학습 지원 서비스가 개발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외에도 일본의 ‘Infty Reader’은 수식을 인식해 점자로 표현하는 성능이 아주 뛰어난 소프트웨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장애친화적인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는 대체자료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제작 인력과 비용을 줄이는 등 학습 접근성 향상에 기여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체 자료가 필요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여우와 두루미가 같이 쓸 수 있는 그릇이 있다면요? 김정호 이사는 지난 2008년 애플 사의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했을 때를 회고합니다.

길쭉한 식기에 부리를 넣어 음식을 먹는 두루미와 납작한 식기에 입을 갖다 대고 음식을 먹는 여우의 모습을 귀엽게 표현한 일러스트

[그림=각자 맞는 방식으로 식사하는 두루미와 여우]

 

“그때 저희 회사에서는 어떤 스마트폰에 설치해도 시각장애인이 음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고 보니까 아이폰의 보이스오버 기능을 켜면 시각장애인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 지금까지 개발한 건 다 필요가 없게 됐구나. 더 이상 우리의 기술은 필요가 없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뻤다고 덧붙였습니다. 시각장애인용 핸드폰을 시중에서 찾기 힘들다거나, 전용 핸드폰이 단종되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깐요. 

 

“마찬가지로 시각장애 학생이 다른 학생과 같은 교재를 사용해서 공부할 수는 없을까요? 몇 달씩 기다려서 대체자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런 어려움도 없고 반 친구들과 함께 같은 자료로 공부할 수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요? 아직 오진 않았지만 2025년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2025년 도입 예정인 AI 디지털 교과서는 장애 학생을 위한 ‘접근성 기능’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개발 가이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모든 과목에 적용될 예정인 이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마치 아이폰의 등장과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자료가 필요 없게 되면,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은 쓸모 없게 되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디지털 교과서를 설계할 때 시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기능들을 세세하게 고려해야 하고, 출판사가 아주 강한 의지를 갖고 정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디지털 교과서 개발자, 편집자들에 대한 관련 교육과 기술 지원도 필요할 것입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공부해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이루어 갔으면 합니다."

 

•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위한 과제

대담자 3인의 사진과 소개. 행복나눔재단 이보인 팀장,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 연구소 박진석 연구원, 엑스비전테크놀로지 김정호 이사.

 

발표 뒤 진행된 대담에는 박진석 이화여대 특수교육연구소 연구원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방법 개발이 어려운 실태와 앞으로의 개선책에 관한 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질문과 답변 몇 가지를 발췌해 소개하겠습니다.

대담 현장의 모습. 대담자 3인이 발표 무대 위 의자에 앉아서 현장 질문과 사전 질문에 대하여 답하고 있다.

[사진=대담 현장]

 

|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 방법(학습 매체) 선택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보인 팀장 

학생들을 특성에 따라 개별화해 그룹별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어렵다. 개별화가 어렵다는 것은 '솔루션 돌려막기가 가능한가?'가 핵심이다. 예를 들어, 비장애인을 대상으로는 솔루션 돌려막기가 쉽다. 1등이나, 30등이나 같은 문제집을 쓸 수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 학생들은 다르다. 저시력 학생과 전맹 학생을 가르칠 때 전혀 다른 솔루션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장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실명 시기는 언제인지에 따라 보유한 정보가 다르다. 개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진석 연구원 

학생마다 사용하는 학습 매체가 다르고 또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선호에 따라서 학습 자료가 갖춰져야 하는데 대체자료의 선택권이 적다 보니 학생들이 자료를 선택하기보다 주어진 자료에 따라가게 된다. 이것이 학습 매체 선택이 어려운 이유다.

 

| 시각장애를 위한 학습법과 보조도구 개발이 더딘 이유는 무엇인가?

 이보인 팀장 

기술적인 부분보다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보조도구 개발이 더딘 이유는 딱 하나,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시장이 없다는 의미다. 한 학년에 공부하는 학생이 10명 정도밖에 안 된다. 학습 환경이 좋아져서 학생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20명, 30명 정도다. 사업화가 불가능한 숫자다. 그래도 보조도구를 개발한다고 하면, 반드시 임팩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엔 임팩트 투자 역시 돈도 벌고 포트폴리오도 좋게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는 안 하려고 한다. 장애, 빈곤처럼 정말 어려운 부분에는 투자가 안 들어오고 소외가 심화된다.

 

| 2025년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될 예정이다. 학습환경 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와 대응책이 있나?

 김정호 이사 

가장 걱정되는 건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게 많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새로운 건물에 가는 것과 같다. 비장애인은 화장실이나 교실 위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 학생은 다시 보행 훈련을 받고 원하는 장소로의 이동을 연습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학생은 바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3월에 교과서를 받으면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사용법부터 익혀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과정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보화 교육, IT 활용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기술을 통해 접근성을 확보하고 개선하려 할 때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김정호 이사 

지난 9월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이 공개되고 출판사를 대상으로 설명회가 진행됐는데 현장의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디지털 교과서도 새로운 것인데 게다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장애 학생들까지 잘 쓸 수 있도록 접근성까지 지원하라고 하니까 "너무 어려운 과제"라는 현장 목소리가 컸다. 교육환경을 변화시키는 과제는 맞는 일이고, 좋은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출판사, 기획자, 개발자들에게는 상당히 큰 부담이 발생한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발생할 거다. 지금 공영방송 같은 경우엔 화면 설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때 정부의 지원이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교과서도 정책적 목표이기에 그 부담을 전적으로 출판사나 민간에 지우는 것은 맞지 않고, 제도가 안착하는 데 굉장히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충분한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진석 연구원 

접근성 기능을 만들고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개발자이거나 성인일 거다. 실제로 사용하게 되는 사람은 시각장애 학생이고 2025년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부터 사용하게 될 거다. 개발자들에게 익숙한 기능이 초등학생들에게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지털 교과서가 아이패드로 구현되면 글씨를 쓰는 것보다 아이패드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디지털 교과서 개발이 이뤄지면 좋겠다. 

 

| 시각장애 학생 통합 교육의 이점과 관련 해외 사례는?

 박진석 연구원 

미국 사례를 들어 보면 특수교사가 모든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각장애 학생을 지도하는 자격증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장애 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통합 교육을 받는데 그러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맞춤 지원들이 더 필요하다. 특수교사가 방문해서 점자나, 보조공학이나 보행법에 대해 지도하게 되는데,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없다. 때문에 미국에선 시각장애 학생이 일반 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특수 학교로 단기간 이동해서 몰입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의 경우, 전학을 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유연함이 통합교육의 성공을 이끌 수 있는 요소인 것 같다. 

또,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대체학습 자료를 제작하는 기관 ‘미국맹인인쇄소(American Printing House for the Blind)’가 별도로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관에서 제작한 자료를 필요에 의해 선택해 살 수 있도록 바우처가 지원된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학습 도구의 부재를 해결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학습 매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도 보장할 수 있다.

 

| 점자로 공부하는 학생이 국내 1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머지 시각장애 학생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나? 점자 학습 접근성이 제고된다면 점자로 공부하는 학생 수가 더 많아질까?

 박진석 연구원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고 기존의 시각장애인 분들이 많이 선택하는 '유보 직종'을 선택하기도 한다. 안마사 자격증 등 국가 공인의 시각장애인만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다. 진로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앞으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대학 전공은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왜 시각장애 학생들은 이공계쪽 진로를 포기할까? 왜 공무원을 선택할까? 고민이 필요하다. 공무원의 경우엔 공적인 영역에서 '접근성'이라는 측면을 보장해 주고 그 안에서 직업적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좋기에 선택한다고 본다. 

 이보인 팀장 

접근성이 향상되면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보면 에듀모아의 사례처럼 문제집이 없어서 공부를 포기하거나 점자가 배우기 어려워서 포기하거나 하셨던 분들이 많다. 이런 학습 환경이 개선된다면 당연히 지금보다는 많아질 것이다.

 

| 디지털교과서 등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할 때 접근성뿐 아니라 사용성 제고도 필요하다. 디지털콘텐츠나 솔루션을 개발할 때 참고할 만한 우수 사례나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김정호 이사 

접근성과 사용성이 항상 같이 가는 건 아니다. 두 개념을 설명할 때 휠체어 경사로에 비유하곤 한다. 접근성은 경사로가 있냐 없냐의 문제고, 사용성은 경사로의 경사가 충분히 완만해서 휠체어를 타고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느냐는 문제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적용하자면, 접근성을 보장한다면 그것이 시각장애 학생들이 활용하는 데 얼마나 편리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수 사례라는 것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과거, 접근성과 사용성이 훌륭했던 사례로 구글 홈페이지가 있었다. 검색창, 버튼 하나, 아주 간단하고 좋았는데 요즘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사용자들이 원하는 사용 경험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일단 접근성이 보장되면 사용성이 좀 부족하더라도 학생들이 적응할 수 있게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사용성이 좀 부족하더라도 학생들이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적응할 수 있다. 

 

| 시각장애인의 학습과 성장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보인 팀장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밸런스인 것 같다. 오늘 김정호 이사님 강연을 들으면서 많이 배웠다. 큰 기술도 중요하고, 기술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간극을 메꾸는 작은 사업들도 중요하다. 그것들의 균형을 잘 찾아서 기술도 많이 발전되고 그 사이에 있는 학생들의 어려움도 해소된다면 학습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솔루션을 만들 때부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각 상황별로 쓸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면 좋겠다. 대체자료를 만들고 그것으로 공부하는 걸 관찰했더니 비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시각장애 학생이 어느 부분을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는 문제가 생겼다. 문제집을 점역할 때 시각장애인 혼자 공부할 때도 있고 비장애인과 함께 공부할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이 고려되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김정호 이사 

시각장애라는 어려움이 있는 건 인정하되 그 어려움 때문에 학생의 미래를 한계 지을 필요는 없다. 학생 스스로, 학부모와 함께 그걸 헤쳐 나가고 풀어나가려고 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아날로그 상황에선 답이 없어도 디지털 상황에선 해답을 찾고 해결책을 마련할 수가 있다. 때문에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하고 장애 학생의 정보접근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나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과 성장’을 주제로 다뤄진 이번 SIT 컨퍼런스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시각의 제약을 넘어 가치 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할 방법을 나누고 토론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시각장애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글 | 양수복
 

*함께 읽어 볼 자료: 우리가 몰랐던 시각장애인의 학습과 성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