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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오파테크 이경황 대표

2019.09.04

발표자 이야기 오파테크 이경황 대표 스토리 대표이미지

시각장애인의
점자 학습을 돕는
기술의 가능성

쉽고 즐겁게 점자를 배울 수 있는 기기 ‘탭틸로’를 통해 전 세계 시각장애인의 점자 학습을 돕고 있는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 Social Innovators Table 여덟 번째 모임의 첫 발표자로 나선 그가 시각장애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기술과 협업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점자 학습 기회의 부족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몰라 읽고 쓰기가 불가능한 사람은 100명 중 1명 정도다. 말 그대로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셈이다. 한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교구와 콘텐츠도 다양하다. 하지만 한글이 아닌 점자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리고 당신이 비장애인이 아닌 시각장애인이라면 어떨까. “전 세계에 시각장애인이 약 3억 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약 10%만이 점자를 읽고 쓸 수 있죠.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는 단순한 문자 이상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큰 의미를 지녔는데도 말입니다.” 이경황 대표는 이 상황을 ‘점자 문맹위기’라고 설명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취업률은 2배 이상 늘어나는데, 제대로 점자를 배울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문맹률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전문 교사가 부족하고, 점자를 가르치기 위한 전문적인 교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통계에 따르면 학습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65만 명에 달하는데, 그에 비해 전문 교사는 6700명에 불과하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 인프라가 부족하니 저시력 학생들은 성장하면서 단계적으로 시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일단 ‘큰 글씨로 프린트한 것으로 배워’ 하며 방치되곤 합니다. 제때에 점자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거죠.”

 

 

탭틸로와 연동해 게임이나 퀴즈로 점자 학습을 돕 는 모바일 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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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얻으면 단순히 소득이 늘어날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삶 자체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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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교육을 위한 게임 체인저, 탭틸로

엔지니어의 삶을 살아온 이경황 대표는 그동안 배우고 쌓아온 기술적 경험으로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교육 기기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로 2년 6개월의 개발 끝에 2016년 탭틸로(Taptilo)를 만들고, 필드 테스트를 완료했다. 탭틸로는 누구나 쉽게 점자를 가르칠 수 있는 교구다. 6개의 점형을 촉각으로 바꾼 블록형 모듈과 모바일 앱을 연결해 점자를 모르는 사람도 게임이나 퀴즈를 즐기며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탭틸로를 소개하다 보면 점자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점자를 읽고 쓰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거나 ‘점자는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하죠. 또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는데 더 이상 점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요.” 많은 시각장애인이 TTS(Text to Speech)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동시에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점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정보의 표현과 전달력 측면에서도 점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경황 대표도 ‘점자는 배우기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한다. “요즘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콘텐츠와 학습 방법을 접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탭틸로가 나오기 전까지 점자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데 집중한 제품은 없었죠. 말 그대로 주입식으로 점자를 배우거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직접 교구를 만들어 가르치다보니 아무래도 어렵다는 의견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사용자들은 탭틸로를 점자 교육을 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말한다. 지루한 점자 교육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 점자 문맹을 해소할 수 있는 혁신적 솔루션이라는 고객들 칭찬은 이경황 대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점자를 배우는 방법

탭틸로는 2017년 미국에서 첫 출시된 이후 호주, 영국 등 영어권 국가와 국내에서 현재까지 약 500대 정도가 보급되었다. 최근에는 유럽, 중동, 러시아 등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계약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제품 효과가 입증되고 인정받으면서 지난 6월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소셜 벤처로 선정되어 대통령의 스웨덴 국빈 방문에 동행하기도 했다. “아이가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부모님의 의견이나 점자를 가르치는데 자신감이 생겼다는 교사분들의 피드백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덴마크에 거주하는 한 고객은 탭틸로를 받고 직접 감사하다는 손편지를 보내오기도 했고요.” 탭틸로가 가진 탁월함은 ‘어떻게 하면 점자를 즐겁고 쉽게 배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만지고, 듣고,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아이들 손에 딱 맞는 블록 형태로 개발해 영·유아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점자 블록을 기기에 놓게 되면 반대쪽 센서가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체크하게 됩니다. 오디오 센서로 빠른 피드백이 가능하도록 한 거죠.” 그뿐만 아니라 앱과 연동이 가능해 글자나 단어를 선택하기만 하면 점자를 모르는 이들도 쉽게 가르칠 수 있다. 한글, 영어 점자는 물론 점자 음악 프로그램으로 계이름을 익히고 노래를 연주할 수 있어 음악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크기는 작은 멜로디언 정도로 휴대가 간편하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환경에서 탭틸로 앱과 연동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시각장애인이 쉽게 학습할 수 있도록 기존 점자보다 5배 크고 블록 분리가 가능한 탭틸로 기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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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고 기록 할 수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점자는 시각
장애인에게 대체 불가능한 문자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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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의견으로 성장하는 기술

탭틸로가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시각장애인들을 찾아가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고 보완해 현재 버전까지 오게 되었다. “탭틸로를 사용해보면 블록이 근처에 갈 경우 자석으로 달라붙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로 인해 블록 위치를 잘 잡기 어려우니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듣고 아이디어를 낸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피드백 중 하나는 점필(Slate and Stylus) 방식에 대한 의견이었다. “점자를 잘하는 시각장애인분이 탭틸로를 써보더니 어색해하시는 거예요. 왜 그럴까 생각했더니 저희가 ‘점필 방식’이라는 점자 쓰기 방식을 고려하지 못했더라고요. 그때 ‘이것도 모르면서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에 크게 반성했습니다.” 점필은 점자를 종이에 직접 쓰는 방법을 말한다. 6개 점이 돌출된 점자를 종이에 쓰려면 송곳과 같은 도구로 찍어야 하는데, 이를 뒤집으면 반대쪽이 튀어나와서 좌우가 반전된다. 그래서 점필 방식으로 점자를 쓸 때는 일반적인 필기와 다르게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써야 하는데, 탭틸로는 표시되는 점자를 그대로 쓰도록 해서 점필로 점자를 익힌 경우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후 점자를 쓰는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조사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탭틸로 블록을 배치하는 점필 모드를 소프트웨어 수정을 통해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디테일은 탭틸로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각장애인들의 높은 만족도로 이어졌다.

 

 

점자 문맹률 1%를 낮추기 위한 목표

지난 7월 독일 전시에서 탭틸로를 선보이며 유럽 관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복지 수준이 높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요를 확보해 성장 속도를 높이고, 남미에서 중동까지 파트너를 확장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가 아닌 부모가 직접 탭틸로를 이용해 점자 학습을 지도할 수 있도록 12주 차 가이드북 초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구나 점자를 쉽게 가르칠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목표죠.” 또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이 가이드북을 가지고 튜터가 되어 시각장애 아동들을 가르치는 파일럿 테스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경황 대표의 최종 목표는 탭틸로를 개발도상국에 10만 대 보급해 WHO 기준 시각장애인 점자 문맹률 1%를 낮추는 것이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 중 90%가 개발도상국에 있습니다. 저희 제품 한 대로 10명 정도를 가르친다고 볼 때 10만 대를 보급한다면 100만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품의 내구성 연한을 3년 정도로 본다면 거의 3억 명 중 1%인 300만 명의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오파테크가 탭틸로를 수익 모델로 가져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지속 가능성 때문이다. 솔루션을 개발해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속도와 집중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비영리보다 수익 사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경황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펀딩을 통해 전 세계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일을 꿈꾸고 있다. 점자를 배운 이후에 사용할 수 있는 점자 디스플레이와 멀티라인 점자 디스플레이 카메라를 이용해 시각장애인의 이동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점자를 읽고 쓸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그의 도전과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SIT에서 탭틸로를 시연하고 있는 이경황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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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문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점자 교육 콘텐츠를 보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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