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많은 가능성을 여는 첫 열쇠

2020.06.16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많은 가능성을 여는 첫 열쇠 스토리 대표이미지

청각장애인의 '소통'
수많은 가능성을 여는 첫 열쇠

청각장애인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자,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발굴하기 전에 경험과 시도에서부터 막혀버리지 않도록, 소통에 대한 우리사회의 보다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관문, '소통'

에디슨은 유년 시절 중이염과 열차 차장의 폭력으로 한쪽 청력을 완전히 잃고 다른 쪽 귀도 거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거의 평생을 청각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오히려 축음기·전화 송신기 등 인류에게 ‘소리’를 선물했다. 베토벤 또한 25세에 청력을 잃기 시작했으나, 그의 대표적 교향곡인 ‘운명’, ‘전원’, ‘합창’ 등은 청력을 잃어가는 도중이나 완전히 잃은 후에 만들었다. 자신은 듣지 못했으나 역시 인류에게 ‘소리’를 선물했다. 에디슨과 베토벤은 ‘신체적 장애’만이 아니라 ‘사회적 장애’도 극복했다. 신체적 장애 그 자체는 사회문제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차별, 편견, 제도 미비 등 사회적 장애가 바로 사회문제다. 청각장애를 신체적 장애를 넘어 사회적 장애로 받아들일 때 차별 없는 사회, 함께하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청각장애인의 취업률은 64%로 평균 대비 매우 낮다. 그러나 사회문제는 이 수치 이상이다. 이 수치에는 취업 선택의 제약, 고용의 질, 높은 이직률, 취업 후 사회 적응 문제 등은 드러나 있지 않다. 취업, 사회 적응도 큰 과제이지만, 그전에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많다. 취업 문제를 파고들면 활동 영역의 제약 문제가 드러나고, 또 더 들어가면 기회의 제약 문제에 직면한다.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발굴하기 전에, 경험과 시도에서부터 막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어가면 소통의 제약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 청각장애인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소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관문을 넘어서야 한다. 박원진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청각장애인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다 보니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청각장애인 관련 사회문제는 아직 제대로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없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없으니 어떤 소통 문제가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다.

 

10th Conference_Story 01_Infographic

청각장애 인구 (출처 : 한국장애인개발원 <2019 장애 통계연보>)

 

 

'말'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에게도 눈 돌려야

국내 청각장애인은 34만 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2019 장애 통계연보> 기준).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편견이다. ‘들린다’, ‘안 들린다’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청력 상실의 정도가 다르고, 수많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에 일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의학적으로는 잔존 청력을 기준으로 90데시벨(dB) 이상만 듣느냐, 20데시벨 이상도 들을 수 있느냐에 따라 ‘농(deaf)’과 ‘난청(hearing impaired)’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의학적 기준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실제 생활에서는 듣는 것을 포함해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중요하다. 잔존 청력이 거의 없어도 ‘말’로 소통하기도 하고, 잔존 청력이 다소 있어도 ‘수화’로 소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주 의사소통 방법은 말(88%), 수화(3.8%) 외에 필담, 몸짓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보청기, 인공와우 수술, 언어치료 등을 통해 주로 말로 소통하는 비율이 꾸준히 증가(2014년 80.3%) 하고 있다.

'수화 언어’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공식적 언어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이를 줄여 ‘수어’라고 표현한다. 영어를 나란히 적듯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만이라도 수어 역시 같이 제공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다. 보건복지부조차 장애인의 날, 사회복지의 날 외의 주요 정책 브리핑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불과 지난 1월이었다. TV 뉴스 등 일부 정보에 대해 수어 통역을 제한적으로 제공하기도 하는데, 화면이 너무 작아 통역자의 표정을 볼 수 없어 판독이 어렵다는 이슈도 있다. 정보 접근성 제약은 소통의 큰 장벽이다. 우리 사회의 수어 문화에 대한 낮은 인식이 이 장벽을 만들고 있다. 수어 문화만이 아니라 말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 소통 문제 역시 가려져 있는 큰 사회문제다. 우리는 흔히 청각장애 하면 수어 사용자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다수 청각장애인은 말로 소통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경우 소통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장벽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우리 사회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따옴표 이미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물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헬렌 켈러

 

따옴표 이미지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새로운 가능성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통계에 따르면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신생아는 1000명당 1.7명으로 매우 높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서도 신생아 1000명당 1~3명이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등 선천성 질환 중 청각장애 발생률이 가장 높다. 선천적 청각장애일지라도 모든 사람과 똑같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기에 발견하고, 의료 기술과 보조 기기를 통해 청력을 보완하고, 언어치료를 함으로써 소통 문제의 장벽만 넘을 수 있다면, 어휘력·이해력 등 전반적 영역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 IT 강사, 바리스타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각장애인의 인터뷰를 보면 “청각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내용이 종종 등장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할 수 있었는데 이를 가로막은 것은 ‘사회적 장애’이기 때문이다. 말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잔존 청력을 높이는 것이다. 보조 기기, 인공와우 수술 등이 대안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청력이 보완된다 할지라도 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전히 소리는 불명확하게 들리기에 듣는 훈련이 필요하고, 발음 연습, 언어치료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요구된다.

학습 환경의 제약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2018년 교육부의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중 전일제 통합 학급 참여 비율은 55.1%(특수학급까지 포함할 경우 77.1%)다. 이는 장애인 전체 평균(17.2%)이나 시각장애인(22.7%), 지적장애인(8.8%)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막상 통합 교육 현장에서는 제대로 학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수업 내용 이해나 교우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며, 이에 자존감이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현장의 인식 변화, 또래 집단의 이해 제고 외에도 솔루션 제공 등 교육 환경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헬렌 켈러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물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각장애인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자,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 행복나눔재단 서진석 그룹장

 

10th Conference_Story 01_Bar graph

(출처 : 보건복지부, '2017년 장애인 실태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