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신중년이 탐내는 일자리 메이커 :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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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년이 탐내는 일자리 메이커 :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
“누구나 퇴직을 하게 됩니다. 수십년 동안 가족과 사회를 위해 일해왔으니 은퇴 후 생활은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고통과 고민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이번 SIT Talks의 첫 발표자로 나선 정은성 에버영코리아 대표는 5060 신중년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적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신중년의 미래엔 노인이 있고, 한국의 노인빈곤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예요. 생계가 어려우면 사회적 관계 유지도 힘들고 그에 따른 삶의 만족도도 떨어지기 마련이겠죠. 이 때문에 정은성 대표는 신중년의 일자리에 주목했어요.
OECD 국가 기준 평균 노인빈곤율 14.4%(2020년 기준)인데 반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3배에 달합니다. 가까운 나라의 노인빈곤율을 살펴보면 미국 23%, 일본 20.2%, 영국 15.5%, 독일 9.1%, 프랑스 4.4%입니다. 확실히 큰 차이가 나죠?
돈이 없어 사는 게 슬프지 않도록
특히 한국의 50대, 60대는 수입은 감소하는데 여전히 자녀의 대학 등록금이나 결혼 자금 등 목돈이 필요한 순간이 남아 있어 인생이 막막하게 느껴지곤 할 거예요. 게다가 일이 없어서 건강까지 나빠집니다. 할 일이 없어서 밖에 나가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으니 사회적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외롭고 우울해지니깐요. 그러면 인생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겠죠.
전 연령에 걸쳐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25.7명(2020년 기준)이에요. 이 수치도 OECD 회원국 평균인 11.0명(2019년 기준)에 비하면 약 2배 이상으로 심각하지만, 노인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요. 65세 이상의 10만 명당 자살률은 53.3명에 달합니다. OECD 회원국 평균인 18.4명에 비하면 3배에 달해요. 심지어 2위인 헝가리는 10만 명당 34.2명이에요. 한국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정은성 대표는 “노인 문제의 중심에 신중년 세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5060세대가 퇴직하고 10년쯤 지나면 바로 이 문제상황의 당사자인 ‘노인’이 되기 때문이죠. 위기감을 느껴야 할 때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어요. 왜냐하면 신중년은 이전의 5060세대와는 달리 학력, 경력, 열정과 건강이 충분하거든요.
신중년이 그 의욕에 걸맞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일자리입니다. 일을 해야 수입도 생기고, 사회적 관계도 유지되고,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자존감도 올라가는 등 정신건강에도 좋고, 신체건강에도 도움이 돼요.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일을 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월 평균 의료비를 30% 적게 쓴다고 해요. 일석삼조, 일석오조의 효과가 발생하는 게 바로 일이라면, 50대에도 60대에도 다시 일을 하는 게 좋겠죠?
에버영코리아, IT와 신중년을 잇다
정 대표는 신중년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IT 사회적기업 에버영코리아를 설립했습니다. 신중년, 노인과 IT산업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셨다고요? 정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죠.
“요즘 퇴직하는 분들도 어느 정도 인터넷 시대를 경험하죠. 신중년이 현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만 제대로 하면 신중년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요.”
현재 60대인 정은성 대표는 약 10년 전 처음 에버영코리아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어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가 출발점이 되었죠. 사회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지를 다지던 중에 ‘나이차별’, ‘성 차별’, ‘학력차별’이라는 3가지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답니다. 그중 나이차별을 없애는 방법으로 신중년과 IT산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IT산업에 기반한 일자리를 만들어보게 된 것이죠. IT산업 내 업무에도 단순 반복적인 업무가 있고, 그것을 하려는 청년층이 별로 없다는 데서 사업을 착안했어요. 청년층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순한 일이 바로 신중년에게는 좋은 일자리가 되겠다는 발상이었죠.
에버영코리아가 주요 고객사인 네이버와 처음 협력한 일은 ‘지도 블러링’이었어요. 네이버의 지도 서비스를 쓰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네이버가 제공하는 지도에는 ‘거리 뷰’라는 서비스가 있어요.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자동차가 전국의 도로를 다니며 촬영한 사진으로 실제 거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예요.
이때 찍힌 사진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과 자동차 번호판들도 섞여 있어요. 이것들은 개인정보라서 하나하나 검수하며 흐릿하게 블러링 처리를 해야 하는데요. 단순해 보이지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예요. 정 대표는 네이버가 중국에 맡겼던 이 지도 블러링 일을 수주했고, 이 일을 통해 1년여만에 직원 수가 450명까지 늘었어요. 덕분에 지난 2015년에는 ‘대한민국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이듬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답니다.
직원 만족도 최상, 회사다운 회사를 만드는 방법
설립 9년차, 연 매출 75억원을 자랑하는 사회적기업 에버영코리아에는 현재 3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직원의 평균 연령이 64세라는 거예요. 게다가 신중년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채용 경쟁률이 80대 1이었던 적도 있다고 하네요. 무슨 업무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대체 이 회사의 장점이 뭐길래 신중년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걸까요?
정 대표는 에버영코리아를 ‘신중년에 맞는 회사다운 회사’라고 설명해요. 보통 정규직으로 일하면 주 5일, 일 8시간씩 근무하게 되는데요. 정은성 대표는 이를 과감하게 타파했어요. 신중년의 체력과 생활패턴에 적합하게 주 5일, 일 4시간씩 근무할 수 있게 했어요. 건강을 지키며 일과 개인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죠.
또한 에버영코리아는 신중년의 재교육에도 신경 쓰고 있어요. 과거에 했던 업무, 일에 관계없이 새로운 일을 바탕으로 새 인생을 설계하려면 교육이 필수라고 생각한 거죠. 정 대표는 신중년 재교육을 ‘새하얀 캔버스에 새로운 인생을 그리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컴퓨터공학과 교수, 대기업 출신 전문가 등 학력과 경력은 탄탄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는 소홀한 분들이 계셨어요. 하지만 반대로, 학력도 비교적 낮고 한 번도 사회생활을 해본 적 없지만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열심히 학습해서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업무 수행에 탁월했던 직원도 있었습니다.”
배움이란 단순히 업무 스킬을 익히는 것 이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앞으로도 변해나갈 업무환경에 적응하고 오래 일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라는 거죠. 때문에 에버영코리아에는 ‘에버영 아카데미’가 있어요. 여기서 100여 개 이상의 디지털 에이징 수업을 운영했고, 1000명이 넘는 수가 수료증을 받았다고 해요. 온라인 스터디로 심화학습도 할 수 있다니 학교인지, 회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직원교육에 적극적이죠.
뿐만 아니라, 복리후생도 신중년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해요. 고령의 나이에 꼭 필요한 안과 정밀검진, 자녀 결혼 및 손주 탄생 축하금, 형제상 휴가 등이 바로 그 예시예요. 게다가 합창단, 영화감상반, 밴드, 탁구반 등 신중년이 좋아할 만한 동아리를 지원해 소속감을 높이고 동료간의 사회적 교류도 원활하도록 해요. 이렇게 딱 필요한 직원 복지를 제공하기에 80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지원자가 몰리는 거겠죠? 여기서 끝이 아니예요. 에버영코리아의 정년은 무려 100세입니다. 실제 100세까지 일하지 못하더라도 회사 규칙상의 정년이 100세라고 하면 나이가 몇 살이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덕분에 에버영코리아의 최고령 직원은 86세라고 하네요.
이렇게 신중년 맞춤형 복지와 처우를 제공하는 만큼, 에버영코리아의 HR 제도는 상당히 까다로워요. 여느 대기업 입사 절차와 마찬가지로 서류평가, 필기시험, 실기시험, 면접평가의 4단계를 전부 통과해야 입사할 수 있어요. 입사 후에도 3개월 동안 빡빡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시험도 봐야 하고요. 정식 근무를 시작하면 성과 평가를 통해 분기별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다고 해요. 이렇게 체계적인 HR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뭘까요?
“직원분들이 어렵고 긴 입사 과정을 거치면서 자부심과 프로의식이 더 생기는 거 같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성과 평가가 업무 효율성과 성과 증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지요.”
여기까지 보면 대기업이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에버영코리아는 조직문화에 있어서 ‘평등’을 강조해요. 정은성 대표가 ‘나이차별’, ‘성차별’, ‘학력차별’을 없애기 위해 사업을 구상했던 처음 그 마음 그대로 평등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문화입니다. 그래서 정 대표의 자리도 보통 신입사원의 자리라 불리는 ‘문 앞’이라고 합니다. 직위나 직책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이 같은 책상, 의자, 명패를 쓰는 건 물론이고요.
회사다운 회사, 일다운 일이 많은 세상을 향해
하지만 정 대표는 에버영코리아가 신중년을 ‘우대’하는 회사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어요. 신중년을 우대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라 시장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가 신중년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회사라는 것이죠. ‘회사다운 회사’가 되기 위해 구성원 맞춤형 환경을 제공하다 보니 복지체계가 신중년에게 적합해진 것처럼 말이죠.
때문에 정은성 대표는 신중년을 단순한 지원이나 도움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고 제안해요.
“머지 않아서 50대 이상 인구가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겁니다. 그러므로 공공의 논리가 아니라 시장 수요에 기반해 신중년이 주체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신중년의 여건과 니즈를 충분하게 고려하는 디테일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건 여러 번 강조해도 모자라죠. 신중년이 선택할 수 있는 ‘일다운 일’이 다양해진다면 모든 세대를 위한 바람직한 세상이 만들어질 거라고 봅니다.”
사실 신중년 인구가 늘어난다는 건, 신중년 시장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실버 이코노미’라 불리는 신중년 시장이 72조 8000억대(2020년 기준, 경희대 고령친화융합연구센터)로 성장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2030년에는 168조대까지 성장할 거라는 전망도 있죠. 그렇다면 신중년의 소비 트렌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바로 신중년입니다. 신중년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사고 싶어할지 예측하는 데에 신중년만큼 탁월한 계층이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최근 국내외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할 때 신중년 세대를 직접 참여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신중년을 바라보고, 투자하고, 직무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에버영코리아에서도 AI 데이터 가공 업무 외에 메타버스를 활용한 신중년 온라인 커뮤니티, VR을 활용한 신중년·시니어 케어 서비스 등 신사업을 기획하고 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정은성 대표는 신중년 세대의 잠재력을 여러 번 강조했어요. 신중년의 자원과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줄 거란 전망이지요. “앞으로 신중년 세대가 갖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게 많아질 겁니다. 위기의 ‘기’와 기회의 ‘기’는 같은 한자를 씁니다. 점점 더 많아지는 신중년 세대가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고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고 심지어 ‘노다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