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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청년, 자립을 넘어 연립으로

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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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관계자립취약청년

청년, 자립을 넘어 연립으로

지난 8월, 광주의 자립준비청년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보호종료 후 경제적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이러한 선택을 했다고 보인다. 비슷하게, 고립·은둔청년도 있다. 가족 유무와 상관없이 자립준비청년처럼 사회적 관계망이 무너진 청년들이다. 자립준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은 이름도, 대상 요건도 다르지만 필요한 지원을 얻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는 데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 갑자기 세상에 나 홀로, 자립준비청년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 위탁 등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시설을 나와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말한다. 매년 2500여 명의 자립준비청년이 보호 이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보통의 청년에겐 가족이 있겠지만, 가족이라는 보호막 없이 성인기에 들어서는 자립준비청년은 경제적 문제, 네트워크 부재로 고립의 위험이 높다.

 

“처음엔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내가 이거 하나 못할까’ 싶었죠. 그런데 집세는 누가 내고 공과금은 누가 내겠어요.
자립지원정착금 등의 제도가 있지만 잘 몰라서 지나치게 되는 게 많아요.” (권용수, 보호종료 7년차 자립준비청년)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주거지원, 저축통장 등이 주어지지만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온 자립준비청년이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기란 역부족이다. 공동생활에서 나와 홀로 살게 된 자립준비청년에게 고민 상담, 미래 설계를 도와주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가 필요한 이유다. 보호시설에서 함께 아동, 청소년기를 보냈던 청년끼리도 퇴소 후 연락이 끊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박설미 사단법인 야나 사무국장은 “퇴소 후 아이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주어지는 여러 지원을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립정착금으로 받은 큰 돈을 주거 등 생활수단을 마련하기도 전에 날려버린다든가, 잘 몰라서 지원 신청 시기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시설에서 자립지원전담요원이 퇴소 후 5년 이내의 청년을 모니터링하게 되어 있는데 담당자 한 명이 70~80명을 관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관리가 어렵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청년도 많다”고 설명한다.

 

 자립준비청년 중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다'는 응답 비율 일반청년 16.3%에 비해 자립준비청년은 50%로 월등히 높음

자립준비청년의 실업률은 16.3%로 일반청년 8.9%의 2배에 달한다

• 나 여기 있어요, 고립·은둔청년

털투성이의 곰 손이 손바닥만 한 창문 너머로 커피를 건네준다. 지난 11월 초 방영된 SBS 스페셜 <곰손카페>에 등장한 곰손카페의 영업 콘셉트다. 중국 상해에 자리한 카페 ‘HINICHIJOU’와 일본 오사카의 ‘쿠마노테카페’에서 소스를 차용해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곰손카페는 1년 이상 방 밖을 나오지 않았거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던 고립·은둔청년을 채용해 일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방송은 고립·은둔청년이 조명되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현재 고립·은둔청년을 호명하는 정확한 용어도 그 수에 대한 공식적인 집계도 없으며 관련 지원도 전무한 실정이다.

 

SBS 스페셜 방탈출 프로젝트 곰손카페 프로그램의 모습

사진 : SBS 스페셜 <곰손카페>

 

고립·은둔청년이란,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6개월 이상 집밖에 나오지 않으며 학교, 일터 등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집에만 머물며 대인관계가 단절된 청년을 말한다. 일본어 ‘히키코모리’로 알려진 이 청년들은 가정 내 폭력이나 소통 문제, 학교폭력, 직장 내 따돌림, 인간관계의 어려움, 사회적 기준의 압박감 등 다양한 계기로 은둔을 시작한다.

이들 고립·은둔청년에게 방 밖으로 나오라는 요구는 압박으로 느껴진다. “지금 잘못하고 있으니까 힘내서 밖으로 나와야 해.” “언제까지 ‘잉여짓’ 할 거야?” 등 은둔상태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현재 모습을 사회적 기준에 미달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청년을 더욱 더 움츠러들게 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고립·은둔청년의 현황도 추정치만 존재할 뿐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18~34세 청년 3520명을 대상으로 평소 외출 정도를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6%가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장애와 임신, 출산으로 외출하지 않는 경우가 포함되어 정확한 수치는 현재 없다. 전문가들은 이 자료를 기반으로 은둔청년이 약 30~40만명 존재한다고 추정한다. 고립·은둔청년은 대부분 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반면, 가족간 소통이 단절되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정의 문제로 확산되기에 현황 파악과 고립청년과 부모를 포괄하는 통합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2021년 청년 사회 경제 실태조사 3.6%인 127명의 청년 응답자에 따르면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고 응답한 3.4%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응답한 0.2%가 있었음

 

• 신뢰와 지지로 움트는 변화의 씨앗

자립준비청년은 보호종료 후 보호시설과의 단절과 부모의 부재 등으로 사회부적응과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고립·은둔청년에게도 마찬가지다. 심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준다. 전문가들 역시 입을 모아 필요한 조언을 건네주는 멘토,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또래
그룹 등 ‘다양한 지지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옛날 이야기를 해도 통하는 게 있죠.” (권용수, 자립준비청년)

“한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 설 수 없는 식물에 지지대를 만들어줬더니 새 잎을 많이 내더라고요.
사람도 식물과 같아요.” (모유진, 자립준비청년)

“나를 상처주는 사람 말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정인희, 고립·은둔청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여줬어요.
왜 조금 더 일찍 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아까웠어요.” (김이진, 고립·은둔청년)

 

사회적 고립 상태의 청년이 필요로 하는 사회 서비스에는 심리·마음건강 상담과 복지·생활 관련 상담 및 지원 등이 있다. 도와줄 주변 사람이 없는 고립 청년은 대인관계, 취업, 직업훈련, 건강, 주거 등 모든 영역에서의 지원 필요도가 타 청년보다 높게 나타났다.
(청년의 사회적 고립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

사회적 관계망이 취약해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정서 지원 서비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립준비청년 대상으로 심리상담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고, 아동권리보장원의 ‘바람개비 서포터즈’와 같이 멘토-멘티 관계로 당사자 선후배를 연결하는 또래 네트워크 지원사업도 있다. 그러나 참여 기회는 제한적이다. 또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을 모니터링하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숫자도 확충될 예정이지만 보호와 자립지원 서비스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면 인력 확대와 함께 보다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심리, 정서 지원 서비스와 사회적 지지 관계 형성의 측면에서는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된다.

고립・은둔청년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 일상생활 회복지원 서비스 등이 있지만 수요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8개 지자체에서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각 지역별로 지원센터 설치, 실태조사, 부모지원 등에 착수했으나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하고 청년 현황에 대한 근거자료가 없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이 어렵다. 현황 파악 및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법제화가 필요하다.

 

• 다시 한번, 용기 낼 수 있도록

열다섯 번째 SIT에서는 자립준비청년과 고립·은둔청년을 발굴하고 사회적 네트워크와 일 경험을 제공하는 소셜 이노베이터들에게 주목했다. 자립준비청년과 고립·은둔청년 등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상승하고 지원이 확대되는 부분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만을 중심으로 접근하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시각은 근본적인 원인을 간과해버리기에 위험하다.

청년의 사회적 고립이란 특수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동기에서 청년기로 이행 중에 발생하는 충격, 가정과 학교 등의 문제에 의해 닥칠 수 있는 사건이다. 또한, 청년기에 발생한 사회적 고립은 중장년기, 노년기에도 이어질 수 있고, 가족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비용이 크게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청년의 관계망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을 일시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보다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해결을 위한 사회적 지지체계를 마련해 건강한 사회, 건강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청년이 사회 구성원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도 온 사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