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N인분의 삶을 사는 영케어러,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2023.05.25
N인분의 삶을 사는 영케어러,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스토리 대표이미지
N인분의 삶을 사는 영케어러,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조기현 작가, 박재형 사무국장(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외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어보신 분 있나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는 ‘영케어러’입니다. 이제 막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영케어러는 장애, 질병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을 말합니다. 행복나눔재단은 지난 5월 25일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는 조기현 작가를 비롯해 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영케어러 지원 사업을 수행해온 박재형 사무국장,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정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본부장 등이 참석해 영케어러의 정의부터 시사점, 다양한 지원책의 필요성 등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케어러라는 명칭이 우리 사회에 거론되기 시작한 건 2~3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영케어러가 익숙하지 않다면 조손가정은 어떤가요? 부모가 부재한 청소년이 조부모와 함께 사는 형태의 가정에서 조부모의 간병이나 돌봄을 청소년이 하는 경우가 많죠. 조손가정으로만 이해했던 가족 돌봄 청(소)년이 바로 좁은 의미의 영케어러입니다. 청소년뿐 아니라, 조기현 작가와 같이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가족 구성원을 돌보게 된 청년 역시 영케어러에 포함되죠. 행복나눔재단이 인터뷰한 영케어러 도지나 씨는 두 명의 가족을 돌보는 영케어러입니다. 지나 씨는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와 선천적 다운증후군인 외삼촌을 돌보느라 학업과 취업활동은 뒷전이 된 지 오래입니다.
영케어러는 낯선 이름과는 달리 그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13~34세 중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 청년은 3.6%~4.8%(보건복지부 실태조사, 2022), 즉 약 48만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가시화되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영케어러는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갈까요? 먼저 조기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볼게요.
• N인분의 삶, 선택의 기로에 서는 영 케어러
조기현 작가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가 오롯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아버지에 대한 돌봄을 포기해야 하는 양가일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단 건데요. 아픈 몸으로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조 작가는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비와 아버지 병원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복지 서비스는 유명무실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벌었던 돈이 2인 가구 기준소득을 초과한다는 이유 등으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생계, 돌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필요한 진로 이행의 삼중고를 짊어지고 조기현 작가는 아버지의 아버지로써 12년째 살아오고 있습니다.
[조기현 작가 발표 모습]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부는 작년 2022년 처음으로 영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만 13세부터 34세까지였고, 영케어러의 기준으로 치매,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이를 돌보는 일이 6개월 이상 지속해왔는지, 주돌봄자 여부, 단독 돌봄자 여부, 돌봄시간 등이 포괄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케어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복지 요구는 생계지원이 꼽혔습니다. 곧 이어 의료지원이 2순위를 차지했죠. 돌봄 시간의 감소도 중요한 요구로 꼽혔습니다. 영케어러에게 돌봄이 부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 돌봄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긍정한 비율이 높았고, 평균 주당 14.3시간 돌봄하기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원하는 시간 대비 주당 7.3시간을 돌봄에 더 할애해야 하는 과중한 책임이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심리적 어려움이 파악되었습니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22%로 일반 청년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고, 주돌봄자인 영케어러의 경우, 일반 청년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우울감 유병률은 약 7~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케어러를 위한 심리상담 등 정신질환 관련 지원이 시급합니다.
[영케어러 통계 인포그래픽]
전통적으로 ‘효’ 사상을 강조해온 한국은 아픈 부모를 돌보는 사람에게 효자, 효녀라는 명칭을 붙여주곤 합니다. 이 ‘효자’라는 꼬리표는 영케어러를 옭아매는 수많은 문제들을 가정 내의 작은 우환 정도로 축소합니다.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받을 기회를 차단하게 하기도 하죠. 그래서 조 작가는 솔직해지기 위해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썼고, 하나둘 연락을 주는 다른 영케어러들과 소통하면서 지지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영케어러들은 ‘n인분’이라는 이름의 자조모임을 결성해 돌봄 경험을 시로 써보기도 하고, 돌봄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언론과 인터뷰해 어려움을 알리고 필요한 지원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영케어러들은 자신의 돌봄 경험이 학업과 미래 준비를 뒤처지게 한 쓸모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봄 경험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더 많은 실태 조사와 지원책 마련으로 영케어러가 집에만 숨어 있지 않고, 사회로 나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 필요한 건 돌봄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
조기현 작가는 발표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 케어러가 겪는 문제는 과연 영 케어러만의 문제일까요?” 영케어러의 어려움은 ‘독박 돌봄’을 하는 사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평가절하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돌봄은 불행이나 피해이기 이전에 우리 삶의 기반입니다. 누구도,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주로 가정 내 여성이 전담하던 비공식 노동인 돌봄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가치를 인정하여 높게 평가하고, 책임을 사회와 나눌 수 있다면 영케어러뿐 아니라 돌봄을 하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발표자로 참여한 박재형 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은 광주 영케어러 지원사업을 구축해온 경험과 앞으로의 제안을 나눠주셨습니다. 영케어러 담론이 부상한 후 그 전에는 부재하던 영케어러 지원 시스템이 조금씩 구축되고 있는데요. 광주 서구의 경우, 지난 1년간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영케어러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박재형 사무국장 발표 모습]
박 사무국장은 ‘영케어러’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면서 생각과 시각이 전환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케어러 사례의 하나인 조손가정을 지원한다고 하면 조부모를 지원해왔지만 지원의 대상이 조부모가 아니라 돌보는 청년이 되는 거죠. 기존 복지 체계에서 대상자로 부합하지 않는 청년들을 포함하기 위해 먼저 해외 사례를 파악했습니다. 약 3~5%를 영케어러로 추정하는 영미권에서는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학교, 지자체, 병원이 함께하는 지원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죠.
하지만 북유럽권은 상대적으로 연구나 지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영케어러를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피해자'로 인식해, 별도의 지원 대상이라기보다 기존 제도를 통한 보호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최근에서야 영케어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북유럽 국가들은 영미권 대비 영케어러 인구 비중을 7~8% 정도로 높게 봅니다. 이는 돌봄의 영역을 넓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간병 등의 직접적 돌봄 외에도 방 청소, 설거지, 동생 등하교 돕기 등 돌봄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습니다. 광주 서구에서는 해외 사례 파악을 통해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 자격, 기준을 명시하는 법률 마련으로 지원 근거를 두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돌봄과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술 부족, 돌봄 한계에 부딪히며 느끼는 본인의 절망감, 본인의 기회와 시간의 박탈. 이로 인한 대인관계의 위축 또, 돌봄으로 인한 학업과 진로의 포기, 경제활동의 중단, 이로 인한 생계 문제와 정신적 문제가 영케어러가 겪는 어려움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기존 복지 서비스만으로는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줄 수 없기에 박재형 사무국장은 주변 기관들에 협조를 구하고 공모 사업을 따내 지원 사업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공공에서는 구청, 의회, 교육청이 참여하여 행정 정보를 통해 영케어러를 찾고, 공적서비스를 연계하며, 지원조례를 제정하기로 했고, 9개 민간 기관이 참여해 영케어러를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광주 서구의 영케어러 지원 사업 모델 개요]
사업모델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케어러 발굴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인 영케어러도 복지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낮은데 담당자들마저 ‘영케어러가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의 반복이었던 거죠. 노부모를 부양하는 청년만 찾으려고 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만난 사례는 장애 가족을 돌보는 청년, 중독 문제를 가진 부모가 있는 청소년 등 다양했습니다. 기존 '조손가정'의 틀에서 벗어나 '돌봄 부담을 가진 청년과 청소년'으로 시야를 확장하자 영케어러가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첫 지원가정은 알코올중독 부모를 돌보는 청년이었습니다. 돌봄 부담 경감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파견했지만 3주 후 중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정서적 안정과 가사 지원인데, 해당 가정이 필요로 하는 건 집안 정리와 식사 지원이었습니다. 지원의 니즈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요양보호사 파견을 종료하고 가사도우미 지원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영케어러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각 대상자별 맞춤형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연령 규정, 애매한 소득, 동거여부 등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탈락되는 경우를 만나며 공공과 민간의 유연한 대처와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 간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광주 서구는 지자체 최초로 재정 지원 근거를 담은 영케어러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또한 민간협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의료사회복지사, 변호사, 노무사, 행정사 등 전문가를 지원 체계에 편입해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도움이 연결되도록 말이죠.
그리고 올해 완공될 광주 서구청년센터를 거점으로 활용하여 청년간 교류를 통해 영케어러들을 찾고, 지원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입니다. 재원과 사람, 공간이 있다면 지속가능한 영케어러 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례 발표를 끝내며 박재형 사무국장은 강조했습니다. “기존 지원을 연결하는 것으로만은 부족합니다. 새로운 체계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영케어러는 우리사회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돌봄 위기 속 청년들이 마주한 문제를 보여줍니다.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4,50대의 부모님을 모시는 영케어러는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거기준선을 겨우 넘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케어러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교육, 일자리, 주거 등 다양한 청년 지원이 있지만, 가족 옆을 떠날 수 없는 영케어러들이 그런 기회를 활용할 기회가 과연 있을까요.”
보호받고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불가피하게 돌봄 상황에 처한 영케어러를 고려한 새로운 지원 체계 마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지지체계 마련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 돌봄의 NEXT LEVEL,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이어 진행된 토론에는 영케어러 실태조사를 담당했고 돌봄 정책, 돌봄 노동에 대해 연구하는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영케어러를 위한 모금과 지원에 더불어 제도 개선 촉구를 위해 노력하는 박정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본부장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영케어러 지원책과 돌봄 위기 담론에 관한 깊은 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질문과 답변 몇 가지를 발췌해 소개하겠습니다.
[대담 현장]
| 영케어러 지원이 기존의 위기가정 지원, 취약청년 지원과 달라야 하는 이유는?
함선유 부연구위원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를 돌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젊거나 어린 나이에 돌봄을 한다는 건 특수한 경우다. 일반 청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일자리/주거 중심이라 영케어러와는 상황이 맞지 않는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의료 지원, 노인 요양보험 등이 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 ‘케어러’에 대한 정책이나 지원이 전무하기에 기존 지원 조건을 완화하면서 돌봄자에 대한 지원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박재형 사무국장
지금까지의 취약청년 지원정책은 취업, 창업, 교육 등 청년들의 목표에 대한 지원이었다. 그러나 영케어러는 그 목표 외에 ‘돌봄’이라는 추가적인 아젠다가 더 있다. 돌봄이라 하면 대상자도 돌보고 본인도 돌봐야 하는 거라 너무나 복잡다단하다. 기존에 있는 아동/청년/노인/장애 지원을 사각지대 없이 잘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고, 추가적으로 영케어러 맞춤 지원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가장 우선해야 할 영케어러 지원은 무엇인가?
조기현 작가
돌봄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확대되어야 한다. 돌봄 시설에 전적으로 가족을 맡기기 보다 본인이 직접 돌보길 원하는 영케어러가 많다. 문제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이나 할 수 있는 만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돌봄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초과분을 해결해주는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 데이케어센터, 병원 동행, 반찬 지원, 간병과 가사 도우미 지원 등 같이 각 환경마다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다양해져서 영케어러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영케어러의 선택권, 주체성을 인정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함선유 부연구위원
조사를 해보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생계비 지원이었다. 돌봄 부담만 줄여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생계를 책임졌던 가족을 돌봐야 하거나 돌봄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립준비 청년의 경우엔 아무런 자원 없이 사회에 나와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동안 자립 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영케어러의 경우, 1인분만 사는 게 아니라 가족의 생계까지 부양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로 이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 일정 기간이라도 사회에 연착륙할 수 있는 생계비 지원이 필요하다.
| 영케어러 문제에 있어 공공 외 민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박정연 본부 장
공공의 역할을 정의하자면 형평성, 민간을 정의하자면 유연성인 것 같다. 공공에서 균등한 체계 안에서 누구나에게 비슷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케어러에 대한 복지가 제도화되기 전, 민간에서 시급한 위기 상황 지원의 공백을 메우는 것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사회와 연계해 간병, 가사, 심리 상담을 연결하는 등 작더라도 가능한 것부터 빠르게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지원이 마련되게끔 목소리를 내는 일도 필요하다.
함선유 부연구위원
영케어러에게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면 좋겠다. 청년들이 돌봄과 진로, 학업을 병행하기 어려워 결국 일을 포기하면서 향후 노동시장에서 누적적인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가족 친화 기업이 하는 것처럼 급하게 돌봄이 필요하면 자리를 비워도 되고,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기현 작가
성동구의 돌봄 경력인정서 사례도 참고할 수 있다. 성동구청은 돌봄을 경력으로 인정해주고 지역 내 기업과 연계해 경력인정서를 채용에 반영하게 했다.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좋겠다.
| 영케어러 문제를 다루며 '돌봄 위기'가 수차례 언급되었다. 돌봄 위기는 무엇을 뜻하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함선유 부연구위원
고령화, 저출산으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돌봄을 제공할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가족 해체나 비혼, 만혼이 증가하면서 가족 내 누군가 아프면 남은 한 명이 돌봄을 독박 쓰는 상황은 영케어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과거 아이를 키우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집안 일을 하는 등의 돌봄은 주로 엄마, 며느리가 전담해왔다. 이 중년여성이 가족 내 부재하거나 역할을 못 하게 되어 돌봄의 부담이 아동이나 청년에게까지 내려온 것이 영케어러의 상황인 것이다. 더이상 가족이 돌봄을 전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가족에게 남겨두었다. 지금은 영케러어가 경험하는 위기지만 곧 모두가 보편적으로 앞으로 경험하게 될 위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 사회가 돌봄을 책임지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면 돌봄 위기가 해결될까?
조기현 작가
개인이 돌봄으로 부담받지 않도록 국가가 전적으로 떠맡거나 시장에 일임하는 것이 좋은 사회일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상 속 친밀한 관계 사이의 사소한 돌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돌봄은 관계에 기반한 노동으로, 돌봄의 질, 즉 어떻게 주고 받느냐 또한 중요하다. 정부와 시장의 역할이 있고 개인의 역할이 있기에, 이 개인의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돌봄의 외연을 넓히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주배경아동이나 코다(CODA)*와 같이 부모를 대신해 통역을 하는 일도 해외에서는 돌봄으로 인식한다. 이렇게 일상의 다양한 돌봄으로 영역을 확대해 접근해야 돌봄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
| 그렇다면 돌봄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재형 사무국장
사회적 돌봄을 확충해야 한다. 가족에게 책임이 지워져있는 돌봄 부담을 나눌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돌봄 서비스 총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함선유 부연구위원
이와 함께 개인의 돌봄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변화도 필요하다. 현재는 돌봄 하는 사람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돌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돌봄을 누구에게 다 맡겨버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돌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일도 하고 돌봄도 하고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제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SIT 컨퍼런스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를 통해 돌봄 위기와 영케어러가 겪는 어려움이 서로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영케어러는 삶의 기반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상황에 처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 지점은 바로 돌봄에 대한 생각 변화인 것 같습니다. 돌봄수혜자뿐 아니라 돌봄제공자에 대한 인식과 고려가 필요하겠고, 가족이냐 시설이냐, 공공과 민간의 이분법적 접근을 뛰어넘어 개인과 사회가 함께 돌보는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이번 SIT에서 논의된 방법들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라며 행복나눔재단도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글 | 양수복
*함께 읽어 볼 추천 자료: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 (oopy.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