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십시일밥 이호영 설립자

2017.11.03

발표자 이야기 십시일밥 이호영 설립자 스토리 대표이미지

나의 공강 시간을 친구의 한 끼로

다양한 협업이 필요할 때 언론은 종종 놀라운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이호영 십시일밥 설립자는 Social Innovators Table 세 번째 모임 발표자로서 하나의 기사가 비영리 단체에 가져온 파급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호영 십시일반 설립자

 

 

 

친구의 밥 한 끼를 위한 아이디어

“스물다섯 살 때쯤 졸업하면 막연히 대기업에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지 몰랐고, 비영리 단체와 국제기구조차도 구분할 줄 몰랐죠.” 평범한 대학생 이호영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 친구는 월세를 낼 돈이 없는 달엔 강의실에서 침낭을 이용해 잠을 잤고, 다른 친구가 식사를 마친 배식판을 가지고 밥만 리필해 한 끼를 해결했다. 이호영 설립자는 그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강의와 강의 사이, 자투리 시간인 공강 시간에 내가 학생 식당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그 대가로 식권을 받아 친구에게 준다면 그 친구가 밥 한 끼를 편안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십시일밥의 출발은 이처럼 단순했다. 이호영 설립자는 함께할 친구들을 모집하고, 아이디어에 동참해줄 교내 식당을 찾아 매칭했다. “식기 세척, 배식, 홀 정리 등 우리가 식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했어요. 하지만 ‘대가를 식권으로 받아 차곡차곡 모아서 학교에 다니는 취약 계층 친구들에게 전한다’는 원칙은 하나였죠. 우리 주변 문제, 대학생들 문제이니만큼 국가나 학교가 아니어도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호기로운 도전이 가져 온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설립 후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십시일밥은 약 4,2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6만2,000여 개 식권을 전달했다(2017년 기준).

 

 

따옴표 이미지

 

공강 시간 1시간이면 충분하니
시간적 장벽이 없어지고, 
강의실 아래
구내식당에서 바로 봉사할 수 있으니
거리적 장벽도 없어졌죠. 
그렇게 시공간의
장벽을 허물고 나니 참여자가 저절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따옴표 이미지

 

 

십시일밥 임팩트 (봉사자 4,220명, 식권 61,503장, 수혜자 2,236명)

자원봉사자의 소속감과 위생을 위해 유니폼을 마련한 '십시일밥'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

동아리였던 십시일밥은 규모가 커지며 비영리 민간단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해졌다. 자원봉사이지만 식당에서 일하기 위해선 보험이 필요했고, 위생복도 사야 했다. 자원봉사자 모집을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현수막도 제작했다. 수익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최소한의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원봉사자의 인건비를 식권 대신 임금으로 받는 변화를 시도했어요. 거기서 20%를 떼어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 80%는 식권을 사서 기부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준 거죠.” 이런 변화를 통해 십시일밥은 비로소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2014년에 시작한 십시일밥은 이제 전국 20여 개 대학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로 성장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확산될 수 있었을까. “처음엔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요. 건국대학교에 이어 연세대학교와 경희대학교를 찾아가 직접 홍보하고 참여를 유도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자분이 찾아왔는데, 4일 내내 봉사 현장을 직접 살피고 취재해 성심성의껏 기사를 작성해주었어요.” 이 기사가 큰 파장을 불러와 이후 100회 이상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자연스럽게 참여 대학도, 참여 봉사자도, 참여 식당도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언론이 십시일밥을 주목한 이유

그렇다면 언론은 왜 십시일밥을 주목하게 되었을까. 이호영 설립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답을 찾았다. “첫째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라고 여기던 대학생들의 공동체 의식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어요. 취직 걱정에, 스펙 쌓기에 바쁜데 과연 누가 할까 싶었지만 한 학기 이상 봉사한 정회원이 어느새 누적 수 4,300여 명에 달했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상황만 주어진다면 남을 돕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십시일밥이 증명한 셈이었습니다.” 둘째는 십시일밥이 설명하기 쉽고, 그만큼 확장하기도 쉬운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시공간적 장벽이 없으니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름이 재미있어 변형도 쉬웠다. “실제로 십시일밥은 격주로 방배동 판자촌에 반찬을 배달하는 ‘십시일찬’을 만들었어요. 지난 2년간 600여 명의 독거 어르신을 도울 수 있었죠. 대학 내에서는 십시일밥과 별개로 후배에게 도서를 전달해주는 ‘십시일권’이나 동물권을 보호하는 ‘십시일냥’ 등의 단체가 생겨나기도 했고요.”

 

 

따옴표 이미지

 

기존의 봉사활동은 집이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최소 서너 시간은
할애해야 참여할 수 있었거든요. 
학원에도
가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봉사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만큼 부담스럽죠

그런데 십시일밥은 달랐습니다.

 

따옴표 이미지

 

 

주요 일간지에 캠퍼스 '나눔' 사례로 소개된 십시일밥 이미지

주요 일간지에 캠퍼스 '나눔' 사례로 소개된 십시일밥

 

 

또 다른 '나눔'을 위한 변화와 도전

십시일밥이 널리 알려지며 뜻을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이들도 생겨났다. 스타트업 ‘열린옷장’은 십시일밥 수혜자 중 취준생에게 3박 4일 무료 정장 대여권을 제공했고, ‘푸른나눔’에서는 여성 수혜자에게 생리용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호영 설립자는 십시일밥을 통해 선한 의지는 어디에나 있지만, 마땅한 플랫폼이 부족한 현실을 깨달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플랫폼만 있다면 변화의 동력을 만드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십시일밥을 떠나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센터로 자리를 옮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가 받은 도움을 더 많은 학생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소셜 이노베이터로서의 의식이 다시 사회 곳곳에 퍼져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시일밥을 떠난 이호영 설립자는 더 큰 도전과 실험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을 이용해 배식, 식기 세척, 홀 정리 등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이미지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을 이용해 배식, 식기 세척, 홀 정리 등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

 

 

따옴표 이미지

 

십시일밥은 소수의 대학생이 시작한
아주 작은 운동이었습니다. 
대학의 배려와
교수님들의 관심, 무엇보다 적극적인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따옴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