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키뮤 남장원 대표
2019.09.04
발표자 이야기 키뮤 남장원 대표 스토리 대표이미지
발달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 스튜디오
예술은 시대를 뛰어넘고, 장애의 장벽도 넘을 수 있다. 미술에 소질이 있는 발달장애인을 아티스트 디자이너로 양성하고 있는 남장원 키뮤 대표에게 장애는 ‘조금 다르지만 특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발달장애인 그림이 쏘아 올린 가능성
“발달장애인 미술 교육 봉사 활동에서 한 학생의 그림을 보고 어릴 적 처음 고흐 그림을 봤을 때처럼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그때 본 그림이 제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습니다.” 2008년, 남장원 대표가 공익 근무 기간 동안 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 봉사 활동을 할 때였다. 그는 당시 미술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학생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이의 감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표현 방식과 화려한 색감은 기존에 보던 그림과 달랐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른 학생들의 그림도 그냥 폐기하기에는 아까운 것이 많았다. 이 그림들을 조금 손보거나 그리는 방식을 달리하면 디자인 방면에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장원 대표는 자신이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그린 원화는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의 재능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달 장애인 학생들이 아티스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했죠. 그렇게 시작한 것이 ‘키뮤’입니다.”
장애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나 기회를 주면 자신의 재능을 펼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고용을 둘러싼 사회적 장벽
남장원 대표는 키뮤를 설립하기에 앞서 시장조사를 통해 발달장애인 디자이너가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알아봤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시행된 ‘장애인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국가 및 지방자치 단체나 상시 30인 이상 기업에서는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부담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실상은 장애인 고용보다 부담금을 택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길에서 만나는 장애인을 피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에 장애인 시설이나 특수학교가 들어온다면 반대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우스갯 소리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냐는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융화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처음 전시에 참여했을 때 좋은 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시선 속에 발달장애인은 도움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강하다는 겁니다. 키뮤를 통해 비장애인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당당한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체계적인 디자인 교육으로 일자리 창출
2012년 키뮤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연구를 진행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충현복지관을 찾아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들의 재능을 확인했다. 미술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리는 방법, 재료 선정, 다양한 커리큘럼 등을 알려줬다. 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해외에서는 발달장애인 디자인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파악한 후 교육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그 결과 2015년에는 미술 교육을 진행한 3명의 학생이 패션 회사의 전문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남장원 대표는 좀 더 전문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자 2017년부터 충현 복지관이 운영하는 충현비전대학 문화공연예술대학에 키뮤 디자인학과를 개설해 공동 운영하고 있다. 총 3년 과정으로 디자인 교육을 비롯해 커뮤니케이션 방법, 직업적 마인드와 매너 교육 등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진행하며 사람들과 함께 일할수 있는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있으며, 현재 학생 25명이 공부하고 있다. “올해 키뮤 디자인학과에서 첫 졸업생들이 배출되었어요. 이들 중 3명을 키뮤의 정식 디자이너로 채용할 예정이에요. 디자이너 명함도 만들고, 회의에 참여하거나 회식도 함께 하면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생활하도록 지원할 겁니다. 내년에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 10명을 채용해 함께 일할 예정입니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직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코어워킹 시스템
남장원 대표는 교육과 디자인만으로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하에 팀을 재정비했다. 기존에 하던 교육과 디자인은 남장원 대표가 하고, 브랜드 관리와 경영 마케팅, 법률 부분에 각 분야의 전문가를 투입했다. “팀을 새롭게 정비한 후에 크고 작은 성과들이 있었습니다. 홍보나 마케팅, 법률적인 부분을 전문가에게 일임하니 교육과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발달장애인 디자인 작업에 최적화한 ‘코어워킹 시스템’을 개발해 일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발달장애인 학생들은 장애 특성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 다르다. 자폐장애 학생들은 꼼꼼하고 색감을 표현하는 능력이 우수한 반면, 지적장애 학생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우수하고 작화 스타일이 독특하다. 초반에는 이런 점을 반영해 발달장애인 개인 특성에 맞게 업무를 선별하는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코어워킹 시스템을 통해 장애 특성에 따라 하나의 디자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 학생들이 일러스트레이터, 캐릭터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컬러리스트 등 디자인 각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한 작품을 혼자서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협업을 통해 함께 완성하는 과정도 익힐 수 있다. 또한 이 시스템은 정해진 시간에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어 사업적으로도 효과가 뛰어나다.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로서 행보
키뮤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가 도움, 지원, 기부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이 당당한 아티스틱 디자이너로 인정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육뿐 아니라 사업적 부분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고 다방면으로 사업 분야를 펼칠 계획이다. “키뮤를 설립한 지는 오래됐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은 2018년부터라고 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의 역량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사업 모델을 세분화할 계획이었는데, 마침 초기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매쉬업엔젤스’에서 시드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키뮤에서는 발달장애인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을 디지털 에디션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아트 시그너처 에디션과 머그잔이나 휴대폰 케이스에 작품을 그려 넣어 판매하는 상품 등이 있다.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타투 스티커 브랜드와 함께 ‘인스턴트 타투’에 발달장애인 디자이너의 작품을 사용했으며, 화장품·가방 브랜드 등과 함께 원화를 일러스트나 패턴등의 디자인 콘텐츠로 개발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올해 초에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가해 많은 사람에게 발달장애인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브랜드와 기업의 협업 제안을 이끌어냈다. 지난 10년 동안 남장원 대표는 80명이 넘는 국내외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만나면서 그들의 성공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 키뮤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를 양성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다.
키뮤를 통해 장애에 대한 문제를
무겁지 않고 가볍게, 마음을 열어 편안하게
인식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