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한국난청인교육협회
오은주 이사장
2020.06.16
발표자 이야기 한국난청인교육협회 오은주 이사장 스토리 대표이미지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
청각장애인은 학교와 일상생활에서 어떤 소외와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을까?
한국난청인교육협회 오은주 이사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 놓치기 쉬운 청각장애와 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어우러져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청각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저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곤 하는데요, 그때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상담도 잘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든든한 아들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바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오은주 이사장은 아이가 태어나서 1년 동안 소리에 반응이 없고, 말문이 트일 시기에도 말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고, 청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돌아 오는 길에 남편과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만 나요. 우리 아이가 왜 청각장애인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아이가 보청기를 착용하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아침마다 작은 귀에 보청기를 끼우는 게 너무 안쓰러웠지만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인공와우 수술을 권했지만, 낯선 수술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개월 된 아이가 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나이 어린 저희 부부가 3000만원이라는 수술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무엇보다 수술을 해도 잘 듣지 못하고 말을 못 하면 어쩌나? 모든 게 걱정이었죠.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이 모든 것을 정확한 정보 없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고민 끝에 아이의 인공와우 수술을 결정한 오은주 이사장은 나중에서야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공와우 정보 공유에서 정책 제안으로
답답함은 인공와우 수술을 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수술 후에는 전문 청각사가 잘 들을 수 있도록 조율해주는 매핑(mapping)이 필요하고 적절한 언어치료도 계속 받아야 하는데,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소문만 듣고 찾아갔다가 아이가 40분 내내 울다 나오는 날도 있었다. 오은주 이사장은 이때부터 인공와우 수술과 언어치료 등 모든 정보를 인터넷 카페 ‘인공와우와 함께 사는 이야기’에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인공와우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던 것처럼 누군가도 인공와우와 난청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카페에 글을 올릴 때마다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수술비는 얼마인지, 수술 후에 정말로 잘 들리는지, 언어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등 궁금증이 쏟아졌죠. 생각보다 난청인 아이가 많았고, 인공와우 정보에 목마른 엄마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렇게 모인 이들이 어느새 7000여 명이 되었다. 카페 가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난청 관련 단체에서 난청인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 여러 정책을 건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오은주 이사장은 뜻이 맞는 이들과 힘을 모아 2006년 한국난청인교육협회를 설립했다.
한국난청인교육협회의 주요 사업
청각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현재 한국난청인교육협회는 저를 포함해 7명의 이사와 11명의 지부장이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청각장애인과 난청인이 보다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난청인교육협회에서 운영하는 사업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난청인 가족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매년 여름 가족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 시작해 15년 동안 300명이 참여했다. “가족 운동회, 자기표현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가족들과 어울려서 하는 프로그램이라 청각장애 아이들의 참여도가 좋은 편이에요.” 두 번째 청각장애 이해교육은 청각장애 학생이 있는 학급을 찾아가서 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에게 청각장애에 대해 설명하고, 청각장애 학생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해요. 지금은 전국 11개 지역에서 청각장애 이해교육 강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청각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위한 안내서인 통합교육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이다. 2019년에 세 번째 발간한 통합교육 자료집에는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및 지도 방법, 정부 지원 관련 법률, 보장구에 대한 정보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초등학교 청각장애 이해교육 중인 오은주 이사장
청각장애 이해수업 강사 교육 현장
그중에서도 오은주 이사장은 청각장애 이해교육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청각장애 학생이 있는 교실을 찾아가 80회가 넘는 강의를 했다. “강의를 하며 만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있었어요. 겉으로 잘 티가 나지 않는 청각장애이다 보니 단짝 친구에게만 장애 사실을 알린 채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차츰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해 오해가 쌓이게 된 거예요. 강의를 통해 청각장애라는 사실을 반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동안 오해한 부분을 이야기하며 반 전체 학생이 모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각장애 이해교육은 1년에 두 번,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청각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물론, 보청기와 인공와우 수술에 대한 설명, 청각장애 학생이 학교생활에서 필요한 점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학생들에게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직접 착용해보게 해요. 그러면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것도 배우고, 안경처럼 갑자기 잡아 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죠.”
현재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청각장애 학생의 비율은 77% 정도에 이른다. 그래서 한국난청인교육협회에서는 교육청과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청각장애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종시교육청과 아산교육지원청에서 청각장애 학생, 부모, 일반 교사, 특수교사 등을 대상으로 속기, FM수신기 사용법 등을 교육하는 한편,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고 청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청각장애인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
한국난청인교육협회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인공와우에 대한 비용적 지원, 청각장애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방법 등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저희 아이가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2000년대 초반에는 청각장애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지원 정책도 거의 없었어요. 최근 정부 차원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 다행입니다.” 2005년부터 인공와우 수술이 의료보험에 적용되었고, 2018년 부터는 신생아 청력검사를 통해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오은주 이사장은 분명 의미 있는 발전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인공와우 기기는 일반적으로 5년에 한 번씩 새로운 기계가 나와요. 성능이 훨씬 뛰어 나고 소리도 부드럽게 들려서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면 좋은데,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밖에 안 돼요.” 그뿐 아니라 배터리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교체해줘야 하는데, 양쪽 다 교체하려면 20만원이 넘게 든다. 자칫 고장이 나면 수리비 또한 적지 않아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난청인교육협회는 외부 기관과 연계해 다양한 지원 방법을 찾고 있다.
또 한국난청인교육협회에서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FM수신기는 선생님이 마이크를 차고 말을 하면 입 모양을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수신기를 통해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조기기로, 청각장애 학생들이 수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FM수신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생님이 많아요. 필요성과 사용법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해 보조기기가 낯설기 때문이죠.” 한국난청인교육협회는 선생님들에게 FM수신기 사용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사용시 불편한 점이나 개선할 점 등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청각장애 학생들도 여러모로 불편을 겪고 있다. 실시간 온라인 수업 시에는 선생님의 입 모양을 제대로 보기 힘들고, 자막 지원도 되지 않는다. 등교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마스크 때문에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 였다. 오은주 이사장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제약 없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서둘러 찾아 나섰다. 한국난청인교육협회 차원에서 국민 청원에 참여하고, 직접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를 제작해 판매까지 돕고 있다.
청각장애 학생과 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여름 가족 캠프 현장
연구와 정책을 통해 청각장애 지원 확대
“호주에 있는 청각장애인 지원단체인 ‘Hear and Say’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청각장애 학생이 일상생활에 대해 발표하면 언어치료사, 청능사 등 전문가가 부모와 협의하여 학생 상태에 따른 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필요하면 온라인으로 언어치료를 하기도 해요. 그만큼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이 잘되고 있는 거죠.” 오은주 이사장은 우리나라도 호주처럼 청각장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지원 정책도 다양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병원 외에 도움받을 곳이 없는 청각장애 아동의 부모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생애주기별로 체계적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걸맞은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 청각장애 학생들의 기본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습에 관한 모든 영상물에 정확한 자막을 지원해줘야 한다.
청각장애 이해교육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누구나 청각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누구나 난청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세포가 노화되어 잘 못 듣는 시기가 온다. 청각장애인은 나보다 조금 일찍 잘 못 듣게 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저희 아이는 유치원 때 입학 거부를 당하고, 초등학교 때는 왕따를 당했어요.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차별받아야 하는 일일까요? 주위에서 먼저 청각장애 아이를 앞자리에 앉히고, 잘 볼 수 있게 다시 한번 말해주면 어떨까요? 청각장애 아이들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청각장애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부정확한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잘못 들었을 때 한 번 더 말해주는 배려와 용기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