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소리를보는통로 윤지현 대표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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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말소리 번역 서비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졌다. 그중 하나가 온라인 개학, 마스크로 가려진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이었다. 윤지현 대표는 말소리를 문자로 번역하는 ‘소보로’ 서비스로 청각장애 학생들이 마음껏 학습권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
웹툰을 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 소셜 벤처
“IT융합공학과 재학 시절, IT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전 AI가 세상을 바꿀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장 필요한 곳에 활용하고 싶었어요.” 윤지현 대표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떠올렸다. 청각장애가 있는 작가가 경험담을 그린 웹툰이었다. 그녀는 작가의 ‘수업’ 에피소드를 읽으며 청각장애인의 현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많은 청각장애 학생이 수업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아 초·중·고교 내내 학습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요.” 일부 대학에서는 청각장애 학생을 위해 수어 통역, 속기 통역, 대필 등의 도우미 지원을 제공한다. 학습을 위해 꼭 필요한 지원으로서 만족도가 높지만 일정이나 장소를 약속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대학을 제외한 초·중·고교에는 이런 지원조차 미비한 상황. 게다가 청각장애 학생 중 상당수는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받으며 일반 학교에 다니는데,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 웹툰의 한 장면처럼 수업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취업 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편하게 수업을 받았으면 했어요. 말소리를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텍스트로 구현하는 기술을 더하면 좋은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이것이 ‘소보로’의 시작이었죠.” 소보로는 ‘소리를보는통로’의 줄임말로, 인공 지능 기반 실시간 문자 통역 서비스다. 소보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면 말소리가 문자로 변환된다. 소보로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한 윤지현 대표는 한국농아인협회 지부와 대구대학교 등 대학 기관을 찾고, 200명 이상의 청각장애인을 만나며 수요 조사까지 마쳤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일회성 프로젝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결국 그녀는 휴학하고 소셜 벤처를 창업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나만의 속기사, 소보로
윤지현 대표는 SIT 발표 중 소보로가 실행되고 있는 화면을 공유했다. 오랜 경력의 속기사처럼 소보로는 윤지현 대표의 말소리를 거침없이 문자로 써내려갔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물론 실시간으로 속도까지 거의 완벽해 좌중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를 수업에 활용하면 도우미 친구들의 대필 지원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 외에도 직장, 병원, 컨퍼런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소통의 도구가 될 거예요.” 실제로 2018년 5월, 소보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을 때 학교, 병원 등에서 하나둘 관심을 보였다. 작년 4월 서울대학교병원은 병원 최초로 소보로가 탑재된 PC를 도입했다. 특히 이비인후과에서 활발히 사용되며 청각장애인들의 병원 문턱을 낮췄다. KEB하나은행은 소보로를 이용해 실시간 문자 통역 기능, 필담 입력 기능을 지원했다. 청각 장애인은 물론 핀테크 시대에 쉽게 소외될 수 있는 노년층까지 본인의 의사를 보다 편히 전할 수 있었다. “현재 소보로는 학교· 기관·회사 등 총 300여 곳에 보급되어 있으며, 누적 이용 시간도 15000시간(2020년 6월 기준, 7월 현재 17000시간으로 증가)이 넘습니다.” 기존의 문자 통역 서비스는 속기를 담당하는 ‘문자 통역사’가 필요하지만 소보로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 간편하다. 빠르게 갱신되는 기록들이 소보로의 실효성과 편의성을 증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병원에 적용된 소보로 서비스
위기는 한 단계 성장할 기회
예기치 못한 위기는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확정되자, 윤지현 대표와 팀원들은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학을 시작으로 청각장애인의 학습권 문제가 제기됐다. 학교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온라인 강의에 자막을 삽입하고, 수어 통역을 올리는 등 노력을 했지만 자막 지원이 늦어 비장애 학생보다 진도가 뒤처졌고, 수어 통역은 전문가가 아닌 인력이 담당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국의 대학과 초·중·고교, 교육청이 소리를보는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교육은 기본 권리 중 하나인 만큼 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격차가 더 커지니까요.” 온라인 강의에서는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기계음 때문에 발음 분별이 어렵고, 선생님의 입 모양 또한 잘 안 보이기 때문에 보다 면밀하게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윤지현 대표는 팀원들과 회의를 거쳐 온라인 강의 상황에 걸맞은 소보로 PC 버전을 학교에 제공했다. 네모난 자막 창이 있는 소프트웨어로 소보로를 통하자 온라인 수업 화면에 실시간 자막이 띄워졌다. 자막이 없던 인터넷 강의부터 자막을 넣을 새가 없던 실시간 라이브 강의까지 청각장애 학생이 못 들을 수업은 더 이상 없었다.
곧 교실에서 만나게 될 ‘소보로 탭 에듀’
소리를보는통로는 오프라인 개학에도 대비했다. 코로나19 이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입 모양을 확인할 수 없어 청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윤지현 대표와 팀원들은 교실에서 쓸 수 있는 소보로 탭 에듀를 개발 했다. 소보로 탭 에듀는 책상 위에 두고 쓸 수 있는 작은 태블릿 제품으로, 선생님이 무선마이크를 착용해 이야기하면 각자의 태블릿에 자막이 뜬다. 교육에 특화된 태블릿인 만큼 과목별 전문 용어를 등록해 정확도를 높일 수 있고, 복습할 때도 자막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했다. 소보로 탭 에듀는 정식 출시를 앞두고 행복나눔재단의 지원을 받아 체험 프로그램에 선정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소보로가 교실에서 잘 쓰이려면 학교의 협조가 많이 필요해요. 무선마이크 착용, 수업 내용의 기록, 인터넷 환경 설치 등 학교가 부담으로 느낄 수 있는 여러 부분들을 잘 풀어나가야죠. 현재 교육청 예산이 통역 도우미 지급 비용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 또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술이 더 나은 세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고한 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음성인식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소보로의 맞춤 기능
청각장애인이 선택 가능한 다양한 소통 방식의 필요성
서비스를 론칭한 지 2년이 되자 곳곳에서 사용 피드백이 들려왔다. 1년 전 소보로의 고객으로 인연을 맺은 청각장애인 이정선 씨는 소보로의 열혈팬이자 윤지현 대표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건축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한국남동발전에서 건축사로 근무하는 이정선 씨는 대학 시절 내내 강의를 녹음해오면 아버지가 매일 밤 강의 녹취를 타이핑해주셨다고 한다. 건축기능사 자격증을 따기까지 이정선 씨의 아버지는 이런 방법으로 딸의 공부를 도왔다. “소보로를 사용한 후 제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사내 강의에 참석해 강사의 강연 내용은 물론, 농담까지 실시간으로 공감할 수 있죠. 예전엔 강의 때마다 녹음해야 하는데 맨앞자리에 못 앉으면 어쩌지, 실내가 어두워서 입 모양이 안 보일까봐 늘 마음 졸였는데 이젠 그런 걱정은 안 해요.” 윤지현 대표는 이정선 씨를 비롯한 청각장애인 사용자들의 피드백에서 공통된 이야기를 발견했다. ‘이런 서비스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면 어땠을까.’ 윤지현 대표의 미션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었다. “소보로 서비스가 전국 초·중·고교에 안착하는 게 저희의 1차 미션입니다. 대학이나 직장보다 초·중·고교에서 먼저 청각장애인들의 수업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수업을 들을 때 청각 장애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소보로 덕분에 아버지의 대필 없이도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이정선 씨(왼쪽)와 윤지현 대표(오른쪽)
윤지현 대표는 많은 청각장애인을 만나면서 다양한 니즈를 발견했다. 누군가는 수어가 편하고, 누군가는 자막을 선호한다. 재활 정도에 따라 들리는 정도의 차이도 컸다. 일률적인 솔루션으로는 이들을 모두 포용할 수 없었다. “각자 상황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도록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 수어나 속기가 더 편하고 안정적인 경우도 있어요. 다만 매 순간 수어나 속기가 함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학교, 은행, 병원 등 일상에서 수시로 불편이 찾아오는 만큼 소보로는 청각장애인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 그 불편을 해소하려 한다. “기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기술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도구인 AI는 가장 필요한 곳에 제일 먼저 쓰일 수 있도록 발전했으면 합니다. 그런 사례가 되도록 소보로는 앞으로도 ‘소통이 필요한 모든 순간’에 함께하겠습니다.” 청각장애인이 소보로를 통해더욱 편리한 배움과 소통을 실현하는 것, 그로 인해 소통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 윤지현 대표는 그 변화를 위한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초.중.고교 어디서나 '자막이 흐르는 교육환경'을 만드는게 1차 목표예요.
청각장애인 외에도 니즈가 있어 인터뷰나 컨퍼런스 녹취록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고객으로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