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수퍼빈 김정빈 대표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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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새로운 자원이 되는 순환경제 설계자
쓰레기도 돈이 되고, 재활용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순환경제를 설계하는 수퍼빈의 김정빈 대표는 스스로 폐기물을 학습하고 자원화하는 똘똘한 쓰레기통 ‘네프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자원 순환 시스템을 완성하고자 한다.
재활용된다고 믿었던 플라스틱 쓰레기의 역습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매일 많은 플라스틱 제품을 쓰고, 매주 열심히 분리배출하는 것으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 낸다.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자원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퍼 빈’ 김정빈 대표는 그런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재활용 프로세스가 있는데 여전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이유는 뭘까요?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재활용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폐기물 중 비닐의 하루 평균 발생량은 951톤, 플라스틱은 848톤에 달한다. 아파트, 공동주택 단지 등에서 분리배출된 쓰레기의 대부분은 다시 재활용 선별장에 모인다. 이 쓰레기들은 건물 2층 높이의 거대한 산을 이루며 한
데 섞이고 또다시 선별 과정을 거친다. 비슷해 보여도 재질이 각각 다르고 이물질도 많아 재활용하려면 수차례에 걸친 수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사람이 걸러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비용 문제도 발생한다. 결국 대부분이 소각되거나 폐기되는 이유다. “재활용 선별장에 가보면 인간이 만든 아수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해요. 온갖 쓰레기가 뒤섞여 거대한 산을 이룬 광경 앞에서 ‘지금의 재활용 시스템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잘나가는 철강 회사 CEO였던 그에게 ‘플라스틱 쓰레기가 과연 자원이 될 수 있는가’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재활용을 하려면 잘 분류해 돈을 주고 살 만큼 상품성 있는 재생 가능 자원을 선별해내야 하는데, 현재의 분리수거 방식으로는 결국 폐기물로 다시 버려지는 양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플라스틱 폐기 비율 (2017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돈이 되는 쓰레기를 선별하는 똘똘한 쓰레기통, 네프론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만 수거하는 똘똘한 AI 쓰레기통, 네프론
김정빈 대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하고 선별할 방법 부터 고민했다. 이를 위해서는 선별 이후 유통, 가공에 대한 솔루션도 함께 연구해야 했다. 자원 순환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동시에 작동해야만 지속 가능한 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퍼빈은 먼저 재활용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은 PET와 알루미늄에 집중했다. 우리나라는 국내에 넘쳐나는 폐페트병을 두고 재생 섬유를 생산하기 위해 연간 2만2,000톤의 재활용 PET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폐플라스틱을 소재별 구분 없이 한꺼번에 분리배출·수거하다 보니 정작 깨끗한 폐페트병만 골라내지 못한 결과였다. 김정빈 대표는 이에 대한 솔루션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똘똘한 쓰레기통 ‘네프론’을 개발했다. 사용자가 네프론에 투명 페트병과 알루미늄 캔을 넣으면 네프론은 카메라로 이를 판독해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만 분리수거한다. 다양한 폐기물에 대한 데이터가 쌓일수록 네프론의 정확도는 올라간다.
현재는 인식하는 데 4~5초 정도 걸리고, 정확도는 약 95% 수준에 이른다. 네프론 1대가 회수 가능한 캔·페트병이 1,500개에 달해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보다 정확하고 경제적이다. 수퍼빈은 분리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 공장에 팔고, 그 돈으로 사용자에게 쓰레기의 가치만큼 현금을 보상한다.
“저희는 사회에 두 가지 문화를 남기고 싶어요. 첫째는 쓰레기가 돈이 되는 문화, 둘째는 재활용이 놀이가 되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유산을 만들어줘야 플라스틱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프론을 통해 선별한 PET 자원(좌), 수퍼빈이 생산한 고품질의 재활용 PET 플레이크(우)
쓰레기를 유통·가공해 자원으로 활용하는 순환 사이클
네프론은 실제 현장에서 개인이 쓰레기를 거래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전국 14개 지자체와 기업에 약 160대의 네프론을 공급했고, 현재까지 약 10만 명의 사용자들이 저희 제품을 쓰면서 분리수거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어요.” 네프론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의 성과였다. 수퍼빈은 트럭에 네프론을 2대 탑재해 어디서든 편리하게 움직이도록 한 이동식 네프론 ‘수퍼큐브’, 학생들이 쓰레기 문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돈 대신 봉사 활동 시간으로 보상해주는 ‘수퍼루키’도 만들었다. 개인의 참여가 많아져야만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믿기에 계속해서 더 많은 이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연구 중이다.
하지만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만으로 자원 순환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분리수거 후에도 자원화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통 경로에 있어요. 물류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수거 과정에서 서로 성분이 다시 혼입되거나 오염되면서 재활용이 어려워지는 거죠.” 수퍼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집한 자원을 전용 물류 차량 ‘수퍼카’를 이용해 재활용 처리 공장까지 운송하는 물류망을 구축 중이다. 수퍼카는 IoT(사물인터넷) 시스템으로 네프론, 수퍼큐브 등의 로보틱스와 연계해 최적의 동선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수거 체계를 설계하고자 한다.
김정빈 대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폐플라스틱 가공 공장 까지 직접 세울 계획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팩토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쓰레기 선별 과정을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바꾸고, 후반 공정에 발생하는 폐수와 화학적 공정은 최소화하는 거죠.” 분리, 유통, 가공까지 재활용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수퍼빈의 공정은 폐플라스틱 투입량 대비 얻어지는 재생 소재의 양이 88~90%로 기존보다 30% 정도 높다. 수퍼빈 덕분에 기업은 고품질의 재생 소재를 얻고, 참여자들은 생활 속작은 실천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다.
수퍼빈의 순환경제 모델
생산-소비-폐기 대신 자원의 선순환을 꿈꾸는 수퍼빈
“수퍼빈은 순환경제를 설계해가는 회사입니다. 기존에는 없던, 플라스틱 폐기물이 순환되어 재사용되는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죠.”
과거엔 물건으로 탄생했다가 쓰임을 다하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폐기물 문제,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김정빈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용 후 버려진 제품을 자원으로 다시 활용하는 순환경제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순환경제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자원의 투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생산된 제품을 폐기하는 대신 최대한 재활용해 자연스럽게 순환되도록 하는 경제구조를 의미한다. 순환경제를 통해 폐플라스틱이 다시 자원이 될 수 있다면 쓰레기 소각과 폐기로 인한 대기오염과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물론, 자원 고갈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순환경제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자원을 한 번 쓰고 버리는 대신, 사용 후 다시 되돌려 쓰는 ‘순환경제’ 관점의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요. 도시 안에 있는 쓰레기가 자원이 된다면 더 이상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 채취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미래에는 순환경제가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거예요.”
수퍼빈의 자원 순환 솔루션을 소개하는 김정빈 대표
우리 모두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자원 순환 시스템
수퍼빈의 자원 순환 시스템은 조금씩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18년 경북 구미시는 네프론 6대를 이용하면서 약 600톤의 재활용 비용이 기존 40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에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신발, 옷 등을 만드는 국내 대기업의 프로젝트에 폐페트병 수거 역할로 참여해 순환경제를 증명할 계획이다. “국내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면 이 사업 모델을 통해 해외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쓰레기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이니까요.”
김정빈 대표는 자원 순환 시스템을 완성하려면 생산자, 소비자, 정부 각각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산자는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선택하고 분리배출이 쉬운 제품 형태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가 중심 혹은 마케팅 중심의 생산방식보다는 재활용 제품을 소비하는 고객을 하나의 고객군으로 보고 재활용 자원 중심의 제품 시장이 만들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리더십이 생산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친환경 가치를 소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태도가 기업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다시 쓰는 순환경제의 시각에서 제도를 보완하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러분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순환경제의 도입이 너무 늦어진다면 지구 생태계는 아마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수퍼빈은 오늘도 이길 수 없을지 모르는 쓰레기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탠다면 이 싸움은 조금 더 빨리,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수퍼큐브로 직접 재활용을 체험하고 있는 학생들(좌), 미래의 소비자인 어린이들을 위한 수퍼빈의 재활용 교육 현장(우)
수퍼빈은 오늘도 이길 수 없을지 모르는 쓰레기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보탠다면 이 싸움은 조금 더 빨리,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김정빈 대표, 수퍼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