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중도입국청소년,
우리의 미래와 한계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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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입국청소년, 우리의 미래와 한계
다문화 시대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 중도입국청소년은 누구일까? 이들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키워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문화 시대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 중도입국청소년
현재 한국 인구의 2%인 약 100만 명1)은 다문화 가구원으로 추정된다. ‘다문화 시대’의 도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노동자, 유학생 등 이주민을 마주하지만, ‘다문화’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 속한 이들의 삶이 모두 같지는 않다.
그중에서도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이해는 백지 상태나 다름 없다. 중도입국청소년은 통칭 ‘이주배경청소년’으로 불리는 국제결혼가정의 자녀, 외국인가정의 자녀, 탈북 청소년 중에서도 외국에서 출생해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입국한 이들을 말한다. 해외에서 성장하다 입국하는 중도입국청소년은 한국 사회에서 적응과 정착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통계조차 정확하지 않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다문화가정 실태조사에서는 중도입국청소년의 수를 3만 2330명 정도로 추정하고, 법무부의 2019년 통계에는 1만 1000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교육부에서는 2020년 교육기본통계를 통해 9151명으로 추산했다. 이렇게 각기 다른 통계가 나오는 이유는 부처마다 중도입국청소년의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니트족(NEET)2)으로 머무르는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도입국청소년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정확한 통계도 없기에 중도입국청소년의 존재와 고충은 가시화되지 못한다.
1) 2019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2) 니트족(NEET): 진학도, 취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준말)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부처별 정의
SCENE #1 한국어는 어려워
“서투른 한국말 때문에 학교에서 수업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네팔에서는 수학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수학 시간에 모르는 문제를 선생님께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한국말로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그게 참 힘들었어요.”
중도입국청소년은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학업과 생활 전반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크다. 학령기에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입국한 이들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워야 하므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부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과 달리 한국어 학습에 대한 부담이 크다. 대다수가 한국 입국 전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레 맞닥뜨리는 언어의 장벽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걸림돌이 된다.
실제 절반 이상의 중도입국청소년은 한국 입국 후 힘든 점 중에서 ‘언어 문제’를 1순위로 꼽는다.3) 언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의 정규교과 과정을 이수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기란 언감생심이다. 학교와 유관 기관을 통한 수준별 한국어 교육 도입이 시급하다.
3)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5)
SCENE #2 나도 학교에 갈 수 있을까?
“한국에 와서 1년 동안은 학교나 센터에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어요. 어디에서 도움을 얻어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그러다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떼려면 중국에 가야 한다더라고요. 비행기 티켓 값이 비싸서 학교에 안 가고 센터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요. 사실 교복도 입어보고 싶었거든요. 학교에 못 가서 안타까웠어요.”
중도입국청소년 중 60~70%만이 공교육을 받고 있다.4) 공교육에 진입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입학을 위해서는 본국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등 서류를 준비해야 하지만, 전산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국가에서는 직접 학교에 방문해야만 서류를 얻을 수 있다. 이조차도 몇 개월,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러한 이유로 입학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만일 운 좋게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더라도 번역 공증과 영사 인증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모든 과정을 어렵사리 통과해 서류를 제출하더라도 학교에서 지도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입학을 거부하기도 한다. 1991년부터 유엔아동권리협약국인 한국은 모든 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모든’ 중도입국청소년의 교육권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공교육에서 탈락한 청소년들은 학교 밖 청소년이 된다. 반면 운이 좋게 입학에 성공한 청소년들도 학업에 뒤처지거나 교우관계, 학교 적응의 문제로 자퇴를 결정하기도 한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중도입국청소년의 재학률은 감소한다.
4)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6)
중도입국청소년의 공교육 진입과정
SCENE #3 외롭고 우울한 한국 살이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 외로울 때가 많아요. 한국에 와서 아버지를 13년 만에 만났어요. 부모님이랑 만나면 오랜만이라도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색해요. 마음속에 있는 어떤 얘기도 편하게 못 하겠어요.”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이주한 중도입국청소년들은 정착을 위한 과업을 수행하며 심리적인 어려움을 함께 겪는다. 먼저, 가정에서 부모와 안정적인 관계 형성에 실패하는경우가 많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공백기 동안 소원해진 유대가 이주와 합가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구성원과의 적응 문제도 있다. 재혼한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중도입국청소년에게 새부모와의 소통과 유대 형성은 결코 쉽지 않다. 가정마저 쉴 곳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 부모의 물질적,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경제 활동으로 인해 자녀에게 쏟을 여력이 없어 갈등이 생기곤 한다.
그렇다고 학교가 쉼터가 되어주지도 못한다. 학교에서도 앞서 언급한 학업 부진을 비롯해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고 배척당하면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학교폭력으로 자퇴를 결심하는 청소년의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한 연구결과5)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청소년 중 학교에서 따돌림, 차별을 경험하는 비율은 15.7%에 달한다.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심리적 지원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5) 전경숙(2008), 다문화가정 청소년 증가에 따른 교육 지원 정책과제
중도입국청소년의 공교육 대기 시간
SCENE #4 여기서 살면 안될까?
“비자가 6개월 남았어요.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요.”
“한국에 머물려면 F-4 비자가 필요해서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국가공인자격증을 따면 F-4 비자6)를 받을 수 있거든요. 원래 간호학과와 아동교육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나중에 비자 때문에 힘들어질까봐 취업이 쉬운 학과로 진학했어요.”
중도입국청소년에게 산적한 문제 중 하나는 체류자격에 관한 것이다. 청소년들의 배경에 따라 비자 취득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고려인과 조선족 등 재외동포의 경우 만 25세까지 동반비자로 체류할 수 있지만 진학, 취업 등에 제한이 있어 활동 제약이 적은 F-4를 발급받는다. 이 F-4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진로와 관계없는 공인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에 몰두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는 만 19세가 되면 동반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그 전에 진학 또는 취업으로 비자를 변경해야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도입국청소년은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찾기보다 비자 발급에 용이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들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체류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머무르며 적성과 흥미에 기반해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6)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발급되는 장기체류 비자. 유효기간이 없고 3년 단위로 갱신되며 취업 활동이 가능하다. 재외동포 자녀들은 F-4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세탁기능사, 미용사, 조리사, 버섯종균사, 정보처리사, 건설기계운전 등의 국가공인자격증을 취득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수용하는 세심한 지원
열두 번째 SIT에서는 중도입국청소년이 지닌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언어장벽 탓에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중도입국청소년과 다문화 학생을 위한 온라인 교육 컨텐츠 ‘더빙스쿨’을 운영하는 김준성 교사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해 우리 사회에 함께 살 수 있게 하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바로 한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사회는 이미 도래했고 중도입국청소년은 우리에게 다가온 미래다.
현재 교육체계 안에서도 이들을 위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으나, 주로 한국어 교육과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문제들에 대응하기 어렵다. 중도입국청소년도 우리 사회에 소속된 ‘청소년’이라는 보편성을 잊지 않고, ‘다문화가정’이라는 큰 틀 안의 부속된 존재가 아닌 ‘중도입국자’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 소셜 이노베이터들이 있다.
각기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긴밀한 연대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의 사회 적응에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