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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장애인도 나가고 싶다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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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이동성

장애인도 나가고 싶다

이동의 불편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 보장을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2021년 10월, 유튜브에 ‘휠체어 주인이 스우파에 과몰입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으로 활동하는 김지우 씨는 영상에서 화제 속에 막을 내린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 영감을 받아 걸스힙합 스타일로 꾸민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이 영상에는 “각양각색의 휠체어들과 장애 보조도구들이 흔하게 보이는 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응원의 댓글이 쏟아졌다. 뇌병변 장애인인 김지우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 했다. 휠체어는 그에게 이동에 꼭 필요한 아이템이자 일상이다. 그런데 대학 진학을 앞두고 휠체어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뻔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학교 선택 기준에 있어서 성적이나 진로가 아니라 휠체어가 선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집에서 멀고, 산에 있고, 캠퍼스가 넓으면 휠체어로 다니기 힘들어요. 진학할 학교를 선택할 때 내 성적에 맞느냐가 아니라 과연 내가 그 학교에서 휠체어로 생활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어요. 실제로 많은 장애 학생들이 같은 이유로 학교를 중도 자퇴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애초에 모든 대학에 배리어프리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면 공부만 열심히 하거나 좋아하는 분야로 열심히 준비할 수 있겠죠.”

청소년의 경우, 배리어프리 시설 부족을 이유로 지체장애인의 입학을 거부하고 특수학교로의 진학을 권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동이란 단순히 움직여 목적지에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부, 여가 등의 활동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하고 많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다. 그러나 이동 자체가 어려운 지체장애인에겐 모든 경험에의 접근이 차단되곤 한다. 한국의 지체장애인 수는 120만 명이 넘고 뇌병변 장애인과 노인, 부상자 등을 포함한 이동 약자는 168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장애인들은 외출하지 않는 이유로 신체 불편, 외출 도우미 부재, 교통불편, 주위의 시선 등을 꼽는다.

 

전국 지체장애인수, 교통약자수, 외출하지 않은 이유 통계 이미지

스트릿 우먼 파이터> 컨셉으로 연출한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 이미지

1 <스트릿 우먼 파이터> 컨셉으로 연출한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 기획·모델 김지우 | 기획·실무 이민지 | 기획·디자인 장수연 | 사진 장모리

 

 

 

원하는 휠체어를 선택할 자유

휠체어는 장애인의 팔과 다리인 동시에 이동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요소이지만 비장애인에게 휠체어의 가격이나 종류는 낯선 개념이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으로 등록된 장애인은 병원에서 보장구 처방전을 발급받아 국가 보조금으로 휠체어를 구매하게 된다. 병원이나 가정 용도가 아닌 이동 용도로 사용되는 휠체어의 가격은 최소 몇 백만 원대부터 몇 천만 원대까지 다양하지만 보조금은 보장구별로 최저 선에 맞춰져 있어 추가 비용을 자부담해야 하는 장애인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아동의 경우, 신체 사이즈에 맞는 맞춤형 휠체어를 찾기가 힘들고 성인이 될 때까지 평균 4~5차례 휠체어를 교체해야 해 비용 부담이 더욱 크다.

또한 장애인의 휠체어 선택권이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상반신 기능이 원활할 경우, 당사자가 전동 휠체어를 구매하고 싶어도 전동 휠체어 구매를 위한 진단서가 발급되지 않는다. 수동 휠체어를 조작하는데 상지기능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이지만 수동 휠체어를 계속 타다 보면 상반신에 손상이 오며 이중고를 겪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동 휠체어를 타니 20대 초반에 벌써 어깨 관절이 닳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밖에는 울퉁불퉁한 길도 있고 경사도 있는데 제가 팔을 저어 그 길을 간다는 건 비장애인보다 20~30 배 노력이 필요한 일이란 말이에요. 병원에선 상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수동 휠체어를 타는 게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게 오히려 몸을 다치게 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사)한국장애인관광협회 홍서윤 대표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자부담으로 전동 휠체어를 구매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휠체어 구매를 위한 진단서 그 자체가 장애인을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생활을 영위하는 장애인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되지 않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평가받는 건 일찍이 ‘장애등급제’에서도 대두되었던 문제였다. 각계의 노력으로 지난 2019년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것처럼 장애인보장구 지원에서도 진전이 있기를 장애인들은 소망하고 있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관문, 대중교통

설령 필요한 이동 보조기구를 갖췄다 하더라도 장애 인은 집 밖에 나가자마자 다시 한번 난관에 봉착한다. 1980년대 말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해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내 ‘이동권’* 조항이 제정되며 개선이 이뤄져 왔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동네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른바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대중교통’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지하철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사에서는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추락 위험이 크고 실제로 사망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했던 리프트 앞에서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운 좋게 탑승에 성공하더라도 하차할 때 전철과 승강장 사이 폭이 넓어서 휠체어가 빠질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저상버스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저상버스는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경사판이 설치되어 있어 교통약자가 이용하기 좋다. 그러나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7.8% 에 불과하다. 버스 3대를 보내야만 탑승할 수 있다는 의미다.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고속, 시외버스는 장애인 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지난 2019년 시범운행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노선은 KTX 노선과 겹쳐 이용도가 낮고 복도가 좁아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 이동권 -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 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 그래프 이미지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울 때 비장애인은 콜택시를 불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장애인은 택시마저 기다림의 연속이다.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가 운행되고 있지만 서울 지역의 장애인 콜택시 평균 대기시간은 2018년 기 준 58분, 2019년엔 55분1) 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차 간격이 일정치 않아 30분 후에 택시가 올지, 3시간 후에 올지 예상할 수 없어 기다림에 허비되는 시간도 많다. 코로나19로 외출이 감소한 탓에 2020년에는 30분대로 대기시간이 줄었지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10분 이내에 택시를 잡아타기는 요원한 일일까. 장애인 콜택시에 대한 대안으로 지나가는 일반 택시를 잡아 타기도 어렵다. 택시기사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1) 서울시설공단, 2020

 

“장애인 택시가 운행하지 않아서 일반 택시를 타야 한 적이 있었어요. 택시가 오기 전까지 날 거부하면 어떡하나, 일반 택시에는 턱이 있는데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뒤에서 보는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않고 저 사람이 어떻게 택시에 탈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더라고요.” - 이도연 장애인 핸드사이클 국가대표

장애인이 어렵사리 교통수단을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끝난 게 아니다. 수많은 시설물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입장할 수 있게끔 하는 경사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문턱의 불과 몇 센티미터로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통약자를 위한 경사로 등의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지만 ‘의무설치 면적 기준’인 300m² 미만인 소규모 점포는 이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2년 1월 1일 자로 면적 기준을 50m² 이상으로 강화한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신축, 증축, 개축되는 건물에만 적용되어 실효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높다. 때문에 김지우 유튜버는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한 학교 인근 지도를 만들었다. 턱의 유무, 혼자서 문을 당길 수 있는지, 테이블 간 거리가 넓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지, 앉아서 키오스크 버튼에 손이 닿는지 등을 조사했다. 이 지도는 이동 약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인프라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개인이 분투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 제작한 서울대 인근 상권의 배리어프리맵 ‘샤로잡을지도' 이미지

서울대학교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 제작한 서울대 인근 상권의 배리어프리맵 ‘샤로잡을지도'

 

 

 

시선의 감옥 탈출하기

더군다나 외출한 장애인을 향한 비장애인의 시선이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SIT 팀과 인터뷰한 모든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가족을 둔 참가자는 외출할 때마다 느끼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대한 부담을 설명했다.

"비장애인들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잖아요. 장애인들도 그렇게 스쳐가는 기억으로 남겨줬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들 중에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못 나오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 대하듯이 특별하지 않게 봤으면 좋겠어요.” - 김종욱 모델

“예전에 사고가 나고 10년 동안 집에만 있었던 적이 있어요. 비장애인 사회에 나가면 걸림돌이 될 것 같고 ‘집에 있지, 뭐하러 나와?’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러면 장애인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돼요. 하지만 장애인도 꿈이 있고 사회에 나가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거든요.” - 이도연 장애인 핸드사이클 국가대표

“저희 아이가 휠체어를 타는데요. 함께 외출하면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장애인이 대통령보다 더 대접받는다’든지 ‘왜 나와서 힘들게 돌아다니느냐’고 툭툭 말을 던질 때가 있어요. 불쌍하다고 사탕 사 먹으라고 돈 주는 분들도 있고요. 인식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그런 말은 기분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홍윤희 협동조합무의대표

 

 

 

모두의 이동권을 위한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

‘장애우’라는 표현이 있었다. 장애인을 친근하게 이르기 위해 친구라는 뜻을 담은 이 표현에 장애 당사자들은 거부감을 표현했다. 장애인을 친근한 친구로 바라보는 것은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혜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따옴표 이미지

 

장애우가 잘못된 표현으로 지양되고
장애인이라는 표현인 자리 잡은 것처럼
장애인의 이동권 역시
당연해져야 하지 않을까

 

따옴표 이미지

 

 

버스를 기다리는 장애인을 보고 멈춰주고 기다려주는 저상버스를, 턱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는 동료 시민의 손길을, 가게 출입구에 발판을 설치하는 점주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당연하게 마련된 인프라와 매뉴얼을 누리며 외출하는 날이 오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열세 번째 SIT에서는 장애 이동성 제약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적 대안을 개발하는 소셜 이노베이터들에게 주목했다. 장애인 이동성 향상을 위해 이동 보조기기 보급과 인프라 확대 등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외에도 수요자 중심의 보조기기 보급과 빠르게 적용 가능한 실용적 적정기술 확대, 이동에 필요한 운동 역량 확보와 실효성 있는 인식 개선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고려한 통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수전 손택이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에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이라고 썼던 것처럼, 이동의 불편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다. 몸이 다치거나, 나이가 들면, 혹은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동권 보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소셜 이노베이터들의 움직임이 일시적인 불편에 맞닥뜨린 누군가, 혹은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가닿을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