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요?

2018.03.03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요? 스토리 대표이미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요?

2011년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도시 상당 부분이 파괴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도시 재건 계획을 맡은 덴마크 출신 건축가 얀 겔은 현장으로 달려가 가장 먼저 시민들에게 물었다. 재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이 도시 주인인 여러분은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으냐고. 과연 크라이스트처치 주민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그리고 같은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도시’를 계획할 때 질적 성장이 아닌 양적 성장에 주목해왔다.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은 주민이 아닌 ‘자본’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개발은 항상 주민에게 가장 열악한 곳이 아니라 건물주에게 가장 돈이 되는 곳으로부터 시작됐다. 노후 주택을 정비하고 부족한 기반 시설을 공급했지만, 주택 가격이 오르고 주거비가 부담스러워져 원래 그곳에 살던 지역 주민을 재정착시키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처음에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도시가 인간을 만든다”는 얀 겔의 말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의 과거를 지우고, 주민을 분열시켰다. 도시는 팔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고 보고 먹고 일하는 공간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민’이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이 필요한 이유다. 도시재생은 쇠퇴한 물리적 환경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경제가 순환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주민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게 바람직한 도시재생이다.

Social Innovators Table 4호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도시를 되살리는 우수 사례들을 공유한다.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그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경험에 맞춰 변화한 사례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도 살고 싶은 도시를 그려보기 바란다. 얀 겔의 질문처럼 그것이 도시재생의 첫 출발점일 테니까.

 

세계 속 도시재생

도시재생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민 입장에서 도시를 연구하고, 도시 정체성에 맞게 변화한 해외 사례에서 올바른 도시재생 모습을 찾아보았다.

 

 

 

정 부 가  주 도 하 되 ,  함 께  결 정 하 다
스 페 인  빌 바 오

빌바오시는 스페인 철강 산업 중심지였지만, 철강 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으면서 실업률이 24%까지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대홍수까지 일어나 도심이 완전히 침수됐다. 빌바오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업 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도시 정체성을 바꾸고,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빌바오를 ‘살기 좋은 동네’로 되살린 주역은 ‘전략’이었다. 빌바오 도시재생은 민·관 합동의 비영리 단체 ‘빌바오 메트로폴리 30’가 기획하고 도시재생 추진 공사 ‘빌바오 리아 2000’가 실행했다. 덕분에 미술관 근처 네르비온강 주변 70%가 넘는 지역이 관광객이 아닌 시민들이 운동하고 산책할 수 있는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획으로 접근하고, 공공 기관이 합리적인 실행 전략으로 뒷받침할 때 빌바오와 같은 세계적인 도시재생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 이미지

 

 

 

시 민 이  모 이 면  도 시 는  바 뀐 다
미 국  미 네 소 타  미 네 아 폴 리 스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집, 아키스 브레드하우드(Aki’s BreadHaus). 빵집 주인은 임대료가 올라 쫓겨날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건물주가 지역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2011년 미네소타주 주민들은 미국 최초 부동산 투자 협동조합 NEIC (NorthEast Investment Cooperative)을 설립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아 동네의 단골 가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재 NEIC 조합원은 275명이 넘는다. 이들은 공실로 방치된 상점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업에 저렴하게 임대했다. 활기가 필요했던 마을 중심에 자전거 수리점, 빵집, 양조장이 생겼다. 가게 주인들은 임대료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조합원들은 임대 수익을 얻었다. 각 가게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이벤트를 열었고, 커뮤니티는 더욱 활성화됐다. 마을에 애정이 있는 자본이 모일 때, 공동체가 개발을 주도할 때 마을은 이렇게 변할 수 있다.

 

미국 미네소타미네아폴리스 이미지

 

 

 

제 거  대 신  재 사 용 에  집 중 하 다
영 국  런 던

빨간 공중전화 부스는 런던의 상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산업 변화로 필요가 없어지자, 공중전화 부스는 도시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통신업체 브리티시 텔레콤은 변화에 맞서 대안을 제시했다. 와이파이, 무료 충전 등 공공서비스와 1유로만 내고 부스를 사용할 수 있는 ‘레드 키오스크’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런던 시민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공중전화 부스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더했다. 영국 남부 서머싯 마을 주민들은 부스를 사들여 책꽂이를 넣었다.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기부한 책으로 채웠지만, 현재는 전국에서 보내온 책들로 풍성해졌다. 영국 서쪽 요크셔 마을에서는 부스를 박물관으로 바꾸고, 마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옛날 사진과 장신구, 소품을 진열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소가 됐다. 그 외에도 샐러드 바, 1인 사무실, 휴대폰 수리 서비스 센터 등으로 재활용됐다. 이렇게 방치되거나 철거 대상이었던 물건들은 어떻게 재활용되느냐에 따라 새 공간보다 값진 지역 자산이 될 수 있다.

 

영국 런던 이미지

 

 

 

도 시  정 체 성 을  이 어 가 다
일 본  가 나 자 와

도시는 산업구조와 생활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개발이 필요하다. 문 닫은 공장처럼 용도가 사라진 건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가나자와시는 개발 대신 전통을 택했다. 일본 혼슈 북부에 위치한 가나자와에서 관광객들은 ‘에도시대’로 타임슬립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피해를 입지 않아 과거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존된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금박공예를 하는 장인도,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게이샤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 시는 운영을 멈춘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해 시민예술촌을 세우고, 청년 작가들을 위한 저렴한 작업 공간,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채웠다. 석공, 기와, 정원, 목수, 표구 등 아홉 가지 전통 기술을 전승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장인 대학교도 설립했다. 전통 목조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고, 수료한 사람들을 마을 내 전통 목조건물 복원 현장에 투입했다. 단순히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활용하고 소비하고 순환시켜야 가나자와처럼 지속가능한 전통 도시가 된다.

 

일본 가나자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