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발표자 이야기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
2022.11.10
발표자 이야기 안무서운회사 유승규 대표 스토리 대표이미지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무서운회사’의 회사명은 사뭇 독특하다. 그러나 이만큼 회사의 목표와 지향점을 제대로 담고 있는 이름도 없다. 바로 홀로 방에 갇힌 고립·은둔청년을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배우 정려원이 연기했던 ‘김씨’가 좁고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인터넷 연결 이상의 소통을 거부했듯이,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고립·은둔청년은 일정 기간 이상 방이나 집에서 나가지 않아 대인관계가 단절되는 상태를 경험한다.
• 두더지가 땅굴을 파는 이유
학창시절 내내 게임에 몰두하며 온라인 카페 운영과 개인방송 송출 등 활발하게 활동하던 유승규 대표는 20살이 되면서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라고 회고한다. “너도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해야지.” 집이나 학교에서는 지지받지 못했지만, 게임 기반 동료 커뮤니티를 이끌며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해왔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친구들이 하나 둘 대학 진학 등 각자 갈 길을 찾아 떠나가던 중, 이 말 한 마디에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유 대표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패배감에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물론 이뿐만은 아니었고 가정환경에서의 문제도 있었다. 실제 고립·은둔청년들의 은둔 이유를 파악한 통계에 따르면 1위는 ‘대인관계 어려움’, 2위는 ‘부모와의 갈등’, 기타 이유로는 가정폭력, 게임중독, 학교폭력 등이 뒤따른다. 은둔이 처음 시작되는 연령도 졸업, 진학 등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스무 살이 가장 많다.
유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은둔의 원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방의 수만큼 다양하다. 유 대표 역시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소통이 서툰 아버지와 고부갈등에 소진되어 스트레스를 받는 어머니, 장손에겐 친절하고 며느리에겐 하대하는 할아버지 사이에서 힘들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군입대를 계기로 대학 진학 등 사회가 요구하는 코스를 겨우 다시 밟기 시작했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방 상태를 직시했다. 방엔 온갖 쓰레기가 가득 쌓여 나뒹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유 대표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어디에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경각심에 때로 방도 깨끗이 치우고 습관을 개선하는 책도 필사해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은둔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자신을 보며 자책과 절망으로 지쳐버렸고, 또다시 휴학과 칩거생활이 시작됐다.
사진 : 은둔시절 방 내부, 그리고 반복된 노력과 실패
어느 날, 히키코모리가 등장하는 영화 <흔들리는 도쿄>를 본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내가 히키코모리일 수도 있나?” 검색을 통해 K2인터내셔널코리아라는 단체를 발견해 이야기를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는 일본계 회사로 당시 유일하게 한국에서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였다. 우리에게 고립·은둔청년보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익숙한 것처럼 일본의 히키코모리 인구는 최대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길게는 몇십 년간 칩거하는 히키코모리 자녀를 돌보다가 노부모가 사망하면 50대인 자녀도 공멸하는 세태를 이르는 ‘8050세대’라는 용어도 등장하는 등 히키코모리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된 일본은 오래 전부터 셰어하우스, 상담시설, 일자리 지원 등 히키코모리를 지원하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현재 약 1000여개의 민간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K2인터내셔널이다.
사진 : K2셰어하우스에서의 공동생활
• 어쩌면 원래 혼자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도움 요청을 시작으로 K2인터내셔널코리아가 운영하는 대안가족형 셰어하우스에서 거주하며 다른 고립·은둔청년과 교류하며 공감하고 소속감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고립·은둔청년은 가족 내 지속적인 문제로 고통받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가정과 당사자의 분리가 필요하다. 이 지점의 해결은 유 대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고, 1년 후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효용감이 생기고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입사 3년차가 되던 날, K2인터내셔널코리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폐업하고 말았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던 유 대표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창업 권유를 받았다. 모두가 고립·은둔청년 지원이 절실함을 알기에, 동료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 무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그렇게 시작된 안무서운회사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고립·은둔청년이 거주하는 ‘안 무서운 셰어하우스’를 운영한다. 당사자는 셰어하우스에서 공동거주를 통해 기존의 가정환경과 분리되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지지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안무서운회사는 ‘은둔고수’를 양성한다.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5개월의 양성 과정을 거쳐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현 은둔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 지인에게 멘토링을 제공하는 피어 서포터즈 프로그램이다. 은둔과 고립을 겪었던 사람이 ‘은둔이 스펙인’ 고수가 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은둔기간 동안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 있다고 인식할 수 있고, 멘토링을 통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은둔고수가 된 당사자는 30여 명에 달한다.
이밖에도 안무서운회사는 고립·은둔청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더 많은 고립·은둔청년들이 ‘혼자’ 해결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안무서운회사의 활동을 알리는 책자, 음원 제작, 방송과 유튜브 등 미디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사진 : 은둔고수 포스터
사진 : 셰어하우스 입주설명회
• 은둔을 선택하지 않을 용기, 도움에 달렸다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자립이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그 도움을 통해 스스로 설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청년의 은둔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관심 갖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쟁과 효율 기반의 사회에서 은둔이란 누군가에게 유일한 선택지일 수 있다는 것. 은둔을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안무서운회사 역시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폐업 당시와 다를 바 없이 매일매일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자립을 돕기 위해 자립 즉,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공공뿐 아니라 요식·배달업, 유명 유튜버, 인기 TV프로그램 등 민간과 함께라면 더 많은 고립·은둔청년을 찾아내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믿기에, 안무서운회사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미약한 지원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단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저희와 함께 덜 무서운 사람, 안 무서운 사람이 되어 은둔하는 청년들의 사회 진입장벽을 낮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립을 위해서는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