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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에서 만난 사람들
피치마켓
2019.09.04
SIT에서 만난 사람들 피치마켓 스토리 대표이미지
독서와 북 클럽으로
장애인의 교육 장벽을
낮출 수 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독서로 함께할 수 있을까?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책을 출판하고, 독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켜 교육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
“법학 공부를 할 때 판례 등 어려운 글을 읽으며 학력이나 학습 능력으로 인한 정보 격차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만약 글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어서 발달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생 때부터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함의영 대표는 유엔환경계획(UNEP) 한국위원회에서 일하다가 2014년 직접 ‘쉬운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표를 쓰고 나와 혼자 글쓰기에 매달렸지만, 꼬박 1년 만에 출판한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단순히 짧고 쉽게 쓰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다시 1년간 특수학교 학생이 되어 매주 1~2회씩 출석해 수업을 받았다. 대상자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1년 만에 두 번째 책 <오 헨리 단편선>을 냈고, 마침내 두루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4년이 흐른 지금은 각종 세계 명작, 청소년 필독서 등의 문학 도서는 물론 노동법, 공약집 등 공공 문서까지 쉬운 글로 바꾸어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정서적 격차를 해소하는 독서
‘피치 마켓(Peach Market)’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균등한 정보가 제공되는 공정한 시장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다. 피치마켓이 만드는 책의 독자는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와 비장애 경계에 있는 느린 학습자, 노인과 다문화 외국인 등 문해력이 낮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우리는 ‘느린’ 학습자라는 말을 주로 씁니다. 사람마다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른 것처럼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피치마켓이 만드는 책은 아동용 도서나 동화책과는 다르다. “청소년기의 느린 학습자에게 아동용 책은 자존감을 떨어지게 할 수 있죠. 특히 사회적·정서적 격차를 줄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비장애인 또래가 읽는 것을 똑같이 읽는 것이 중요했어요. 책을 통해 얻는 지식에 따라 대화 수준이 달라지고, 공감의 폭도 넓어집니다.” 실생활 정보를 쉬운 글로 전하는 매거진 <리:북(Re:Book)>도 독자들의 긍정적 피드백을 받고 있다. “단체 체험 학습을 가는 길에 한 발달장애 학생이 친구들이 많이 앉는 뒷자리 대신 앞자리에 앉았다고 해요. 선생님이 그 까닭을 물어봤더니 ‘멀미가 느껴질 때는 앞에 앉는 것이 좋다’는 <리:북>의 내용이 생각났다는 거예요.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생이 읽고, 이해하고, 심지어 그 내용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죠.”
책을 통해 얻는 지식에 따라 대화 수준이
달라지고, 공감의 폭도 넓어집니다.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
“비장애인에게 독서는 혼자 하는 개인적인 활동이죠. 반면 피치 마켓에서 함께 하는 느린 학습자에게 독서는 사회 활동에 가깝습니다.” 피치마켓은 쉬운 글로 쓰인 책을 함께 읽는 북 클럽을 진행한다. 내용 이해를 돕고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모임을 하다 보니 발달장애인들이 돌발적으로 큰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어 어느 정도 소음을 용인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피치서가’가 탄생했다. 서울시 관내 도서관 여섯 곳에서 진행 중인 ‘시끄러운 도서관’의 모태이기도 한 피치서가는 지난 해 기준으로 2000여 명의 느린 학습자가 이용했다. “느린 학습자들의 학구열과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들의 정보 습득과 인지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