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이주여성 자립에서
다문화 사회의 해법을 찾다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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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 자립에서
다문화 사회의 해법을 찾다
0.5% 이주민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힘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캐나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 가족이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이다. 게이 문화에 편견을 가진 한국계 캐나다인 아버지, 성차별적 발언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이민 2세대 딸 등 완벽하진 않지만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에피소드를 그린다. 이 드라마를 만든 캐나다에서 한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0.5%(2016년 기 준)에 불과하다. 어떻게 그들은 단 0.5%의 일상을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고, 이에 공감하는 다문화의 토양을 갖게 되었을 까. 잠시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역시 통계상으로는 이미 다문화 시대를 맞이했다. 행정안전부가 2018년 1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205만4621명, 국내 총인구의 4%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담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외국인이나 이주민을 등장시켜 문화 차이를 웃음 소재로 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선 그들이 한국적인 것을 이해하면 감탄하고 좋아하는 한국인 패널의 모습이 수시로 비친다. 겉으로는 다문화 사회를 표방하지만 실은 동화(同化)주의를 지향하는 국내 정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모와 언어는 달라도 우리 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따르라’는 동화주의는 다문화의 다양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차별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현황 (행정안전부, 2018년 11월 기준)
'다문화'의 경계 고립된 사람들
우리 사회에 깔린 동화주의는 결혼을 통해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들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2019년 7월 한 이주여성은 청와대 게시판에 “이주여성을 폭행한 한국인 남편을 강력 처벌해달라”는 국민 청원을 남겼다. 그녀의 호소에서 가장 눈에띄는 대목은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성 인권, 기본권과 관련된 교육은 많지 않다. 오로지 한국어와 김치 만들기 등의 교육이 이루어질 뿐이다. 언어도 좋지만, 결혼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기본권, 인권에 대한 교육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마저도 우리 문화 전파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다문화 가정이란 표현 역시 또 하나의 차별이라고 말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문화 다양성을 뜻하는 ‘다문화(multi-cultural)’를 국제결혼 가정이나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자 용어를 바꿨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문화의 의미만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의견을 물은 한 설문 조사는 다문화 가정하면 동남 아시아계와 중국계 가정이 떠오르지만, 이미지가 좋은 다문화 가정은 미국/유럽/호주계와 일본계라는 답변으로 우리 인식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는 도움이 필요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편견과 차별을
겪는, 우리가 배려해야 할 사람을
의미하는 낙인이 되어버렸다.
다문화 교육정책 연구가 이향규의 저서 <후아유> 중에서
2018년 다문화 가정 인구통계 추이 (통계청, 2018년 다문화 인구 동태 통계)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주여성 자립
이주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은 스스로 정체성을 찾고, 사회 관계를 형성하며, 가족에게 인정받는 사회적 자립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작 경제 활동을 찾을 때는 취업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육아를 병행 할 수 있는 단순노무직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노동관계법이나 사회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로 인한 고립은 이주여성 1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결혼으로 이룬 다문화 가정의 출산율은 2011년 이후로 매년 증가해 전체 신생아 수의 5.5%에 달한다. 현재 0~6세 아동이 성장해 장기적으로 한국 인구를 대체할 경우 인구의 5%, 즉 20명 중 1명은 국제 결혼 가정에서 태어난다는 단순 예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는 이들에게도 대물림된다. 2018년 서울 대림동의 한 초등학교는 신입생 72명 전원이 다문화 가정 어린이였다. 차별이 없을 것 같아 좋다는 이주민 부모의 선택과 역 차별을 받을 것 같아 입학을 기피한 한국 부모들의 선택이 만든 결과다. 우리 사회의 다문화 해법이 ‘상호 존중과 인정’에서 시작 되어야 하는 이유다. 9회 차 Social Innovators Table은 다문화 사회의 해법을 찾기 위해 이주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소극적인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성장의 길을 찾아가는 그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건 정부나 기업이 아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주여성 그리고 한국 선주민과의 ‘연대’였다. “옛 속담에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멀리, 함께 가고 싶습니다.” ‘이주여성 자조단체 톡투미’ 이레샤 페라라 대표의 말처럼 그들이 함께 이뤄낸 ‘자립’의 가능성은 다음세대 그리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위한 디딤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