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RENCE
대담 : 이주여성과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의 가능성
2019.11.05
대담 : 이주여성과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의 가능성 스토리 대표이미지
이주여성과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다문화
사회의 가능성
이주여성이 급증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홉 번째 Social Innovator Table에서는 이주여성의 자립을 돕는 소셜 이노베이터들과 함께 건강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 대담자
최진희 | 아시안허브대표
전명순 | 마을무지개 대표
이레샤 페라라 | 톡투미 대표
이주여성 자립을 대하는 사회 편견
서진석(진행자) 안녕하세요. Social Innovators Table 아홉 번째 모임의 주제는 ‘이주여성의 자립을 통한 건강한 다문화 사회의 가능성’입니다. 이주여성의 자립을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참 많습니다. 이주여성의 전문 역량을 끌어내는 것,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 이주여성의 주체성을 세우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할 텐데요,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실 소셜 이노베이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주여성의 자립에 대해 각자 강조하는 부분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각자 생각하는 자립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진희 이주여성의 자립을 위해 이주여성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전문가 양성 교육을 많이 위탁하는데요, 대부분 다문화 강사나 통번역가 양성 교육을 합니다. 과연 이주여성들 모두가 다문화 강사나 통번역가가 되고 싶을까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님이 말했듯이 한국에 20년 넘게 살았으면 한국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주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한정적으로 생각하는 주변의 시선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여성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이주여성도 한국인과 똑같이 바라봐야 하며, 그들이 어떤 역량을 갖고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다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주여성도 다양한 영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명순 저는 이주여성들이 진짜 자립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정말 좋아하는 일, 그리고 애써서 배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할 때 나시고랭을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 이주여성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사람들이 맛없다고 평가할까 봐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잘할 수 있다고 다독이고, 맛을 평가할 때도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니까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꼈어요. 요리를 잘하고 좋아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던 거죠. 지금은 나시고랭이 케이터링을 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이레샤 페라라 저도 공감합니다. 사람들은 다문화의 가능성을 멀리 놓고 바라보기 때문에 이주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만 하고 있어요. 중요한 점은 이주여성이 각자 지닌 실력을 기회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실 자립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여성 스스로도 실력을 길러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진석(진행자) 지금부터는 이주여성 당사자, 사회혁신가, 사회정책에 관해 각각 질문하려고 합니다. 우선 이주여성 당사자의 입장이 궁금한데요. 이주여성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이며, 사회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진희 아시안허브는 초창기 기초 한국어 교육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하던 이주여성도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 점점 안 오더군요. 게다가 한국어 말문이 조금 트인다 싶으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초부터 탄탄하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여러번 좌절을 겪은 후에는 전문가 양성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변경 했습니다. 사실 이주여성 입장에서도 뭔가를 배우고 싶지만 경제적 상황이 안되어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 사회는 통번역가나 이중언어 강사가 되라고 해요. 그러나 그 일도 안정적 수익을 보장해주진 않거든요. 배움의 니즈는 있지만 현실적 여건이 부족하고, 교육 후 취업을 보장하기도 힘들다는 점이 이주여성은 물론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진석(진행자) 사회적 기업 중에서 다문화 영역의 비중이 불과 0.7%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분야인데요, 전명순 마을무지개 대표님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다문화 영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지는 게 좋을지 알려주세요.
전명순 이런 고민 때문에 조언을 얻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답해줬는데, 이제는 만나기 전에 사전 검열을 해서 거절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막상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의아한 부분이 많아요. 다문화 가정과 관련해 누굴 만났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냥 막연히 다문화 관련 일을 하고 싶은 거죠.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어차피 해도 길게 가지 못할 거라고요. 정말 다문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그 대상을 만나거나 가깝게 지내면서 실질적인 고충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진석(진행자) 이번에는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님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가족 육성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주여성 입장에서 정책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고, 다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이레샤 페라라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얼마 전에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한부모 가족이 됐어요. 다행히 저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어서 남편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책임감 있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많은 남편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남편이 없으면 당장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이주여성이 지닌 실력이나 재능을 인정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주여성이 어려움을 겪을 때 국가에서 안전망을 만들어 이끌어주면 좋겠습니다.
이주여성과 함께 기업이 성장하는 법
서진석(진행자) 전명순 마을무지개 대표님에게 물어볼게요. 기존 아시안 레스토랑과 마을무지개의 차별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명순 마을무지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는 10개국의 음식을 동시에 맛볼 수 있습니다. 주방에서는 8개국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정식 요리사로 일하고 있어요.이들은 모국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는 자긍심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문 셰프없이 하면 6개월 안에 망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탈하게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진석(진행자) 아시안허브에 관한 질문입니다. 최진희 대표님 소속 이주여성 작가들의 저작권료나 창작 활동비는 어떻게 지급하고 계신가요?
최진희 처음부터 전문 작가를 양성하지는 못했어요. 대신 교육과정을 무료로 진행하고, 이를 통해 나온 원고를 다듬어 책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계약서를 써요. 출판하는 데 들어간 투자 비용이 있기 때문에 보통 1000부가 팔린 후부터 저작권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아직 책 판매량이 많지 않아서 작가들에게 저작권료를 많이 지급하지 못했어요. 대신 아시안허브에서는 강연료를 많이 받는 전문 작가가 되도록 물심 양면으로 돕고 있습니다.
서진석(진행자) 다음은 이레샤 페라라 톡투미 대표님에게 묻겠습니다. 이주여성 당사자로서 변화와 발전의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모습이 멋진데요, 톡투미의 밀키트를 F&B 비즈니스로 발전시켜 확산할 계획이 있나요?
이레샤 페라라 물론 있습니다. 올해 조합원 10명이 ‘다밥’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5명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밀키트는 다밥에서 조합원들이 직접 제작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혼자 살면서 아시안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서진석(진행자) 마을무지개 역시 향후 F&B 컨설팅 사업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입니다.
전명순 마을무지개는 프랜차이즈를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대신 컨설팅은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강동구에 있는 이주여성 단체에서 마을무지개와 비슷한 일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다른 이주여성 단체에서 마을무지개 같은 사업을 하고 싶다면 오픈 전까지는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유지해서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진석(진행자) 다음은 공통 질문입니다.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진희 아시안허브는 이주여성과 함께 제 꿈을 이루어가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시인 지망생이었어요.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시집을 내준다는 출판사가 없었어요. 그 무렵 우연히 이주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머, 대표님도 등단하셨어요? 저도 등단했는데, 저한테도 시집 내준다는 출판사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 같이 내는 건 어떨까요?” 그 한마디에 바로 시집을 내게 됐습니다. 이주여성의 꿈도, 제 꿈도 실현되는 순간이었죠. 이게 바로 아시안허브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명순 저도 정말 얻은 것이 많습니다. 저는 친정이 10개국이 넘어요. 이주여성들이 친정에 갈 때 같이 가자는 제의를 많이 하거든요. 반대로 저도 이주여성에게 살던 집을 구경시켜달라고 합니다. 한번은 제가 그들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자 친정이 이번에 새로 집을 지었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이렇게 다양한 국가에 친정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이레샤 페라라 이주여성은 경제적으로 힘들면 바로 공장에 취직합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과 다같이 이주여성의 고민에 귀 기울여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은 없었지만 10년 동안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톡투미를 일궈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있는데,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냈고, 이주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요. 특별한 한 명의 사례가 아닌, 톡투미를 이끌고 있는 이주여성 모두에게 이런 변화가 찾아왔다는 점이 멋지고 인상적입니다.
서진석(진행자) 그 의사 선생님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데요, 박정희 님에게 톡투미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박정희 톡투미 초창기 멤버로 이레샤 페라라 대표님과 오래 함께했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 27년간 살았습니다. 저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다문화 가족이었죠.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아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내가 느꼈던 어려운 점을 한국에 사는 이주여성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레샤 페라라 대표님을 찾아갔고, 톡투미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레샤 페라라 박정희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톡투미 사무실 근처로 이사했어요. 말 그대로 부모 같은 분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우리가 지금처럼 활동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선생님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다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서진석(진행자)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다음 질문은 조금 민감한 질문인데요,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편견이나 반발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레샤 페라라 다문화는 말 그대로 편견을 가진 단어가 아니에요. 지금 한국에서는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사람을 가리키고 있잖아요. 다문화 여성, 다문화 가족, 다문화 단체 등 여기저기 다문화를 붙입니다. 다문화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다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다문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주면 인식의 변화가 생길 거라고 봅니다.
서진석(진행자) 다문화 사회에는 이주여성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같은 이주민도 있습니다.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 있는데, 송인선 경기 글로벌 센터장님에게 물어 보겠습니다. 이주여성의 범위를 넘어 이주민을 위한 향후 계획이 있나요?
송인선 센터장 굉장히 무거운 질문이네요. 우리나라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정책이나 지원 사업을 할 때 단순하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주여성은 네일아트나 바리스타 등 비슷한 직업 교육만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주여성에게 다른 직업 교육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사회복지 분야 공무원같이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에 이주여성(이주민)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세 분야는 이중언어 또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수록 시너지가 더 커집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베트남인이 22만 명, 태국인이 20만 명, 중국인이 100만 명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응급 상황일 때 이주여성(이주민) 공무원이 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이주여성에 대한 시야를 좀 더 넓혀서 더 많은 분야에서 함께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때입니다.
서진석(진행자) 마지막으로 각 대표님의 향후 계획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최진희 아시안허브는 지금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출판 사업은 제가 가장 아끼는 사업중 하나고요. 해외 봉사단을 파견하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더 견고하게 잘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전명순 마을무지개는 교육사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F&B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전통 의상을 대여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매번 계획에 따라 실행하기보다는 저절로 연결되어 다양한 일을 해왔다고 봅니다. 지금은 현재 하고 있는 교육, 케이터링에 집중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직원들과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케이터링이 필요할 때 마을무지개를 꼭 불러주세요.
이레샤 페라라 지난 10년 동안 톡투미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지금도 다방면에서 이주여성들이 활약하고 있어요. 공예와 요리와 교육, 해외 사업으로 나눠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라며, 이주여성의 친정언니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서진석(진행자) 대담에 참여한 세 기업 모두 지금처럼 이주여성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